[브라질 CSP 노조의 파업 집회 / 사진= 브라질 건설 노조 홈페이지]
“급진적인 브라질 노동계가 파업 원인?”
[경제산업팀 이동훈-김승일-임재랑] = 총 투자비 7조원, 세계 2위 철광석 생산국 브라질에 건설 중인 CSP 일관제철소가 격렬한 파업에 발목 잡혔다. 근로자들과 협력업체에 대한 포스코의 도 넘은 '갑질'이 원인 제공을 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CSP제철소(뻬셍제철소)는 포스코와 동국제강이 현지 광물업체 발레와 지분율 각각 2:3:5로 합작해 건설공정률 33%(지난 7일 현재)에 이르렀다. 현재 포스코 건설이 CSP제철소 건설 공사를 총괄하고 있다. 이 단계까지 오면서 7차례나 파업이 일어났다. 브라질 현지 언론들과 노동조합 홈페이지는 물론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까지 ‘오만한 글로벌기업’ 포스코를 성토하는 기사와 글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어느 정도였길래. 파업 시위대들이 무력 진압에 나선 장갑차에 불을 지르며 과격 시위에 나섰던 지난 달 24일 (이하 현지시각)이후 현지 여론은 매우 흉흉하다. 파업 시위 기간 동안 장갑차를 비롯한 경찰 차량 등 13대가 파손됐고, 브라질 근로자 66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국내 언론엔 파업 노동자들이 불 태운 시위진압용 장갑차 사진이 전해졌다. 그러나 연속 시위를 일으킨 동기에 대해 ‘임금과 식권’ 협상만이 거론됐고, 포스코 건설의 오만한 태도를 비난하는 현지 여론은 소개되지 않았다.
포스코 건설 관계자는 ‘브라질 노동계가 급진적이어서...’라는 소위 '브라질 리스크'를 파업 원인을 지목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파업 노동자들에 의해 불 타버린 차량 / 사진 = 유튜브 영상 캡처]
도 넘은 포스코의 ‘갑질’... 어느 정도?
공사기간 2년 동안 크고 작은 파업이 7회나 일어난 것은 ‘브라질 리스크’ 탓으로만 돌리기엔 무리가 있다.
지난해 7월 발생한 파업은 근무지 현장 내 열악한 위생조건 개선이 주 요구사항이었다. 또 현장관리 직원의 폭력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적인 대우를 강하게 요구했다. 심지어 ‘브라질에 와서 브라질인들을 노예 취급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당시 파업은 24일 간 계속됐다.
또 올해 1월 파업은 하청업체 한 곳에서 임금이 체불되면서 일어났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브라질 근로자 대부분이 연계해 파업에 참여했다. 또 올 3월에도 파업이 발생했다. 그 동안 잠복해 있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올해 1월 CSP현장에서 파업이 발생했다는 현지매체 ‘포르토세나비오스’ 기사]
연이은 파업으로 공사 책임을 맡고 있는 포스코 건설의 현장관리 능력이 도마에 오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여러번의 파업이 협력업체 임금체불이나 근로자 처우 개선 문제로 촉발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포스코 건설 현장 책임자들이 협력업체 관리와 노사 소통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올해 6월 5일부터 발생한 파업에서 노조는 현장 안전대책, 근로 환경 개선 등 7가지 요구조건을 내세웠다.
브라질 근로자들은 노동조합 홈페이지 게시판에 “(현장 책임자들은) 전혀 준비 없이 브라질에 온 것 같다”면서 “포스코 공사 책임자들은 평소에도 대화를 하기 싫어한다”고 주장했다. 포스코가 현지 노사문화에 무관심한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또 “예정에도 없던 야근이나 연장 근무 등을 강요하고, 자기들 방식만 고수한다”며 포스코 건설의 일방적 태도를 비판했다. 일부 근로자들은 출퇴근 셔틀버스가 운행이 한정적이어서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했다.
포스코 건설은 이 같은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며 '노조의 주장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갑질’이나 일방통행식 관리가 아니라, 평소에도 노사협력 담당자가 브라질 근로자들을 면담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조가 주장한 사안마다 진위 여부를 따지기 전에 현지 노조와 언론들의 불만이 쏟아져 나온 데 대한 책임이 있다는 지적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파업저지용 전기 울타리 세울 것” 루머 난무… 현지 민심 흉흉
이번 파업과 관련한 한 현지 보도에서 한 브라질 네티즌은 “한국인들은 마치 노예 감독관처럼 일만 시키는 것 같다”면서 “한국이 선진국인 줄 알았는데 정말 뻔뻔한 사람들”이라고 댓글을 통해 비난했다.
브라질 현지 노동법에는 노조가 파업을 하더라도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포스코 건설은 이번 파업에서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앞세워 강경하게 대응했다. 한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이 피해는 연장근무를 포함해 고스란히 협력업체서 고용된 한국인 근로자들이 떠 안고 있다고 전했다.
더구나 파업 기간 동안 브라질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파업에 대응해 8월쯤 포스코와 협력업체에서 한국인 근로자가 대거 파견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노사갈등은 더 고조됐다. 심지어 “파업을 못하게 공사장 주변에 전기 울타리를 설치한다”는 등 살벌한 루머가 SNS에서 나돌기도 했다.
이 역시 포스코 건설은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건설 현장에 한국인 근로자가 추가 투입된다는 루머를 전한 현지 매체 ‘디아리오 도 노르데스테’ 관련 기사]
그러나 국가 대사인 월드컵이 열리는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브라질 언론들은 이런 사실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남미는 최근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 광물, 에너지, 건설 시장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원외교와 한류 문화 확산으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와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그만큼 국내 기업들이 진출을 위해 관심을 기울이는 지역이다.
파업 원인을 '브라질 강성 노조'만을 탓하기엔 궁색해진다. 문제는 한국기업과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파업이 발생할 때마다 앞서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현지 노조 “근본적인 문제 해결되지 않았다”
현지 노조는 지난 10일 파업을 일시 중단키로 결정하면서 “노동자들에게 불만을 촉발시킨 포스코(포스코 건설)가 행동에 나서기를 바랐다”면서 “그들은 우리의 요구에 관심이 없었다”고 비난했다.
이번 파업과 관련해 포스코 건설은 현지 노조가 제시한 총 7개 요구사항 중 ‘출퇴근시간 수당’ 요구만 수용하겠다고 노조 측에 제시한 상태다.
겉보기엔 포스코 건설의 협상노력으로 노조의 파업 동력이 약화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난 10일 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근본적인 것이 해결되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파업은 언제라도 재개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브라질 노조가 공지한 파업 일시 중단 공지]
한편 막대한 자금과 인력이 투자된 CSP제철소를 둘러싼 갈등과 파업으로 포스코가 철광석 강대국 브라질에서 받은 평점은 낙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글로벌 철강 경쟁력 1위 포스코의 명성에 힘입어 합작사들과 브라질 CSP제철소를 수주하게 됐다. 후폭풍 또한 클 것으로 예상된다. 브라질 내 다른 한국기업과 앞으로 진출할 다른 한국 기업들에게도 이번 위기는 남 일처럼 보이지 않게됐다.
글로벌기업은 기업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한 나라를 대표하는 민간외교의 전초부대다. 이번 사태가 포스코 한 계열사 일만으로 치부될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