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거리에서 유독 많이 보인다…외국인이 신기해하는 ‘무채색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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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검정·흰색만 입는 이유, 실용성과 사회 분위기의 결과
무채색 속 개성 드러내기, 한국식 미니멀 패션의 비결

한국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들이 지하철이나 대학가, 사무실 밀집 지역에서 자주 발견하는 흥미로운 풍경이 있다. 계절과 연령에 따라 옷차림은 달라지지만 검정과 흰색, 회색, 베이지처럼 채도가 낮은 색상의 옷을 입은 사람이 유독 많다는 점이다.

특히 겨울철에는 검은색 롱패딩과 코트가 거리를 가득 채우고, 여름에도 흰색 티셔츠와 검은색 바지처럼 단정한 조합이 쉽게 눈에 띈다.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한국 여행 후 “한국 사람들은 왜 검은색과 흰색 옷을 많이 입느냐”는 질문이 반복적으로 등장할 정도다.

시민들이 검정과 흰색, 회색 등 무채색 계열의 옷차림으로 도심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 뉴스1
시민들이 검정과 흰색, 회색 등 무채색 계열의 옷차림으로 도심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 뉴스1

한국에서 무채색 패션이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히 사람들이 화려한 색상을 싫어해서라고 설명하기 어렵다. 국내 소비자의 색상 선호와 사회적인 분위기, 실용성을 중시하는 소비 습관, 한국 패션 특유의 미니멀한 스타일이 함께 작용한 결과에 가깝다.

실패할 가능성이 적은 가장 실용적인 선택

검정과 흰색, 회색은 서로 쉽게 어울리고 이미 가지고 있는 옷과 조합하기도 편하다. 옷을 살 때마다 새로운 색상 조합을 고민할 필요가 없으며 출근과 등교, 약속처럼 서로 다른 상황에서도 무난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검은색은 얼룩이나 변색이 상대적으로 눈에 덜 띄고, 진한 색상이 몸의 윤곽을 정돈해 보이게 한다는 인식도 강하다. 흰색과 회색 역시 청바지, 슬랙스, 운동화 등 대중적인 패션 아이템과 쉽게 연결되기 때문에 한 벌을 여러 방식으로 활용하려는 소비자에게 효율적인 선택이 된다.

실제로 국내 패션 시장의 구매 선호색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한국 소비자가 자주 구매하는 색상에 검정과 흰색을 비롯한 무채색 계열이 포함된다는 경향이 확인됐다. 성인 여성의 의복 색상을 조사한 연구에서도 무채색 가운데 검은색의 착용 비율이 가장 높았고 흰색과 회색이 그 뒤를 이었다.

쌀쌀한 날씨 속 시민들이 검정, 회색, 베이지 등 차분한 색상의 외투를 입고 출근길을 걷고 있다. / 뉴스1
쌀쌀한 날씨 속 시민들이 검정, 회색, 베이지 등 차분한 색상의 외투를 입고 출근길을 걷고 있다. / 뉴스1

‘꾸민 듯 안 꾸민 듯’ 보이는 한국식 미니멀 패션

한국에서 인기가 높은 미니멀 패션과 무채색의 궁합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의 일상 패션은 강렬한 색상이나 복잡한 무늬보다 옷의 실루엣과 소재, 길이, 겹쳐 입는 방식으로 차이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같은 검은색 옷이라도 넉넉한 재킷과 와이드 팬츠를 매치하면 도시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흰색 셔츠와 검은색 슬랙스를 조합하면 직장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단정한 스타일이 완성된다. 색상을 절제하는 대신 핏과 작은 디테일로 개성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외국인에게는 한국인이 모두 비슷한 색상의 옷을 입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한국 소비자에게 무채색은 개성을 포기한 결과라기보다 스타일을 안정적으로 완성하는 바탕에 가깝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회 분위기도 영향

한국 사회에서 지나치게 눈에 띄는 옷차림을 부담스럽게 느끼는 분위기가 색상 선택에 영향을 준다는 분석도 있다. 학교나 직장처럼 여러 사람이 오랜 시간 함께 생활하는 환경에서는 강렬한 색상보다 단정하고 주변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옷이 안전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한국인 3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한 소규모 조사에서는 옷 색깔 선택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타인의 시선'을 꼽은 응답이 60%, '유행'을 꼽은 응답이 53.3%로 나타났다. 표본이 작아 한국인 전체의 성향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개인적인 취향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시선과 유행이 색상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이를 단순히 “한국인은 튀는 것을 싫어한다”는 문화적 특성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무채색 패션은 일본과 유럽을 비롯한 세계 여러 도시에서도 널리 나타나며, 한국에서는 빠른 일상과 높은 활용도를 중시하는 소비 방식이 더해져 눈에 띄는 현상으로 발전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비가 내리는 서울 도심에서 시민들이 우산을 쓴 채 이동하고 있다. / 뉴스1
비가 내리는 서울 도심에서 시민들이 우산을 쓴 채 이동하고 있다. / 뉴스1

색이 없는 것이 아니라 색을 사용하는 방식이 다르다

한국 패션에서 색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기본 의상을 검정과 흰색, 회색으로 맞춘 뒤 가방이나 운동화, 모자, 휴대전화 액세서리처럼 비교적 작은 아이템에 색을 더하는 방식이 자주 활용된다. 최근에는 차분한 파스텔이나 브라운, 카키, 네이비처럼 무채색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채도가 낮은 색상도 일상복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결국 외국인의 눈에 흥미롭게 보이는 한국의 무채색 패션은 하나의 이유로 만들어진 현상이 아니다. 어떤 옷과도 쉽게 조합되는 실용성, 관리의 편리함, 단정한 인상을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기, 미니멀한 스타일을 발전시킨 국내 패션 문화가 서로 겹치면서 검정과 흰색, 회색이 한국인의 일상적인 선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한국 거리의 무채색 옷차림은 획일적인 패션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루엣과 소재, 액세서리를 통해 차이를 만드는 한국식 스타일링이 숨어 있다. 한국 소비자는 색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기보다 전체적인 조화와 활용도를 통해 옷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인에게 낯설고 흥미로운 이 풍경은 한국 사회의 빠르고 실용적인 생활 방식이 패션에 반영된 사례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