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건물 외벽을 타고 연구실에 침입해 8년 동안 200여만 원을 훔친 60대 노숙인이 검찰의 선처로 풀려나게 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김승호 부장검사)는 지난 8일 김모(67)씨에 대해 구속을 취소하고 취업 교육 이수를 조건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김 씨는 2016년 4월부터 올해 9월까지 서울대 일대에서 9차례에 걸쳐 총 22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쳤거나 훔치려 한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기소유예는 범행을 인정하지만, 범행의 동기나 결과 등을 고려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지 않기로 하는 처분이다. 유예 처분을 받은 김 씨는 향후 특별한 사정 변화가 생기면 다시 기소될 수 있다.
검찰에 따르면 과거 자전거 대리점을 운영했던 김 씨는 사업 실패와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당해 일용직 노동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고, 가족에게 짐이 되기 싫어 관악산에서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김 씨의 가족들이 그를 실종 신고함에 따라 법원은 2012년 김 씨에게 실종 선고를 했다. 실종 선고를 받으면 사망자로 간주된다.
김 씨는 주로 외벽 배관을 타고 창문을 통해 서울대 연구실이나 사무실에 침입했으며, 고가의 물품을 훔친 적은 없었다. 검찰은 김 씨가 굶주림과 생활고로 범행을 저지르게 된 점을 감안해, 서울대 교수와 직원 등 피해자 10명이 모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힌 사실도 기소유예 처분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검찰은 김 씨의 사회 복귀를 지원하기 위해 실종 선고를 취소하고, 법원에서 이를 인용받았다. 김 씨는 향후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과 연계해 취업 지원 등의 갱생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검찰 관계자는 "김 씨가 사회에 다시 적응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전했다. 특히 김 씨의 사연을 안타깝게 여긴 초임 검사가 이를 주도적으로 추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검찰에 제출한 편지에서 "세상에는 따뜻하고 약자를 보듬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 주어진 기회에서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다짐했다.
검찰은 이번 처분에 대해 "사안의 구체적인 사정을 세심히 살피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따뜻한 검찰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