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허상 경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세계가 주목하고 젊은 거장 션 베이커 신작 '아노라'가 지난 6일 개봉해 상영 중이다. 션 베이커 감독 여덟 번째 장편 영화인 '아노라'는 올해 5월 제77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미국판 '기생충'이라는 수식어까지 얻은 '아노라'는 션 베이커 특유의 연출력과 사회적 약자를 다루는 날카로운 시선이 돋보인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탠저린' 등으로 잘 알려진 션 베이커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빈곤과 계급 문제를 밀도 있게 풀어내며, 관객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노라' 배경, 스토리, 그리고 독창적인 촬영 기법과 배우들의 연기 등에 대해 심층적으로 알아보자.
◆ 꿈같은 사랑이 낳은 비극, '아노라와 이반 이야기'
뉴욕 클럽에서 일하는 우즈베키스탄계 여성 아노라(미키 매디슨)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현실에 맞서기에는 그리 쉽지 않다. 그러던 중, 러시아 재벌 2세 이반(마크 에이델슈타인)이 클럽을 찾아와 아노라에게 반하게 되고, 두 사람은 화려한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사랑의 열기에 휩싸여 라스베이거스로 떠나 충동적으로 결혼식을 올리지만, 행복도 잠시, 현실은 이들에게 가혹하게 다가온다. 이반 부모는 이 결혼을 인정할 수 없다며 결혼 무효화를 시도하고, 이반은 부모 압박에 혼란과 두려움에 빠진다. 그는 아노라를 버리고 도망치며 기대와 환상을 산산이 부순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의 계급 차이를 강렬하게 비판하며, 사랑과 자본 관계를 조명한다.
◆ 계급 사회 부조리를 날카롭게 파헤치다
'아노라'는 단순한 로맨스가 아닌, 사회적 약자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영화다. 아노라는 이반을 만나기 전까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끝없는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반면 이반은 부모의 재산을 바탕으로 파티와 술로 나날을 허비한다. 이러한 대비를 통해 베이커 감독은 빈곤층 현실과 부유층의 허영심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반 부모가 법의 빈틈을 이용해 결혼을 무효화하려는 모습은 계급 사회 불평등과 부조리를 비판하는 상징적 장면이다. 아노라가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사회적 구조를 강조하며, 현실 계층 구조를 통해 관객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 다큐멘터리적 촬영 기법과 70년대 미국 영화의 향수
'아노라'는 독특한 촬영 방식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베이커 감독은 35mm 필름과 아나모픽 렌즈를 사용하여 고전적이면서도 독특한 질감을 부여하고, 다큐멘터리 같은 사실적 촬영 기법을 통해 현실감을 극대화한다. 촬영 감독 드류 다니엘스는 뉴욕의 차갑고 회색빛 분위기와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색감을 대조적으로 표현해, 주인공들 감정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배경 분위기를 포착했다. 또한 구도와 카메라 움직임에도 신중을 기해, 관객이 이야기 속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현실과 허구 사이를 넘나들며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 미키 매디슨 섬세한 연기, 주인공 아노라 감정을 설득력 있게 표현
주인공 아노라를 맡은 미키 매디슨 연기는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는 가난 속에서도 사랑과 희망을 잃지 않는 순수한 여성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며, 관객이 아노라 감정에 공감하게 만든다. 이반 부모가 아노라를 '천박하다'라고 평가하는 장면에서도, 아노라는 자신만의 자존감을 잃지 않고 상대방을 예의 바르게 대하며 부당한 대우에 체계적으로 맞선다. 아노라가 겪는 좌절과 절망을 매디슨은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전달하며, 관객이 그의 아픔에 동화될 수 있도록 돕는다.
◆ 황금종려상 수상과 그레타 거윅 호평
'아노라'는 지난 5월 제77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10분간의 기립 박수와 함께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심사위원장 그레타 거윅은 이 작품을 "우리를 웃게 하다가 절망에 빠뜨리는 믿을 수 없는 영화"라며 극찬했다. 션 베이커 감독은 칸 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이번 영화를 "성 노동자들을 위한 헌사"라고 표현하며, 성 노동 비범죄화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밝혔다. 그에게 성 노동은 단순히 경제적 생계수단을 넘어 한 개인 자아와 존엄성을 상징하는 의미를 갖는다. 이 작품이 사회적 논의를 촉발시키기를 바라는 감독 의도는 영화 속 아노라 이야기를 통해 강렬하게 전달된다.
◆ 사랑과 절망의 경계에서 전하는 사회적 메시지
'아노라'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더 큰 사회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아노라는 화려한 삶을 꿈꾸지만 결국 신분 상승 꿈은 무참히 깨지고, 사회 구조의 벽 앞에 좌절한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과 자존심을 지키려 한다. 이는 비록 허망한 꿈으로 끝날지라도, 사랑과 존엄성을 지키고자 하는 개인의 저항을 상징한다. 션 베이커 감독은 이를 통해 계급 차별과 성 노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관객에게 사회 모순을 직면하게 한다.
이처럼 션 베이커 감독 '아노라'는 계층 간 간극과 빈곤의 현실을 리얼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촬영 기법과 미키 매디슨 열연, 감독의 사회적 메시지가 어우러진 이 작품은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며, 사회적 약자 현실과 사랑의 허망함을 직면하게 한다. 139분 긴 상영 시간 동안 관객을 웃게 하고 절망에 빠뜨리며, 현실 모순을 조명하는 이 영화는 션 베이커 감독이 선사하는 또 하나의 강렬한 작품이다.
'아노라'는 국내에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선정성 표현 수위가 매우 높아 이 같은 상영 등급이 매겨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작품 장르는 드라마, 코미디, 멜로·로맨스로 분류됐다. '아노라' 쿠키 영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