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강(54)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가운데, 경기도교육청이 지난해 그의 대표작 '채식주의자'를 청소년 유해 성교육 도서로 지정해 학교 도서관에서 폐기하라고 권고한 사실이 재조명됐다. 경기교육청은 2년 전 보수 진영에서 당선된 임태희(67) 교육감이 이끌고 있다.
10일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발표된 이후 온라인상에서는 "경기도 학교 도서관이 폐기한 책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경기교육청 소감이 궁금하다"는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이는 지난해 경기도 초·중·고등학교 도서관에서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성교육 도서'라는 명목으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포함한 2528권의 책들을 폐기한 일을 언급한 것이다.
지난 5월 더불어민주당 강민정 의원실이 경기교육청으로부터 받은 '성교육 도서 폐기 현황'에 따르면 '채식주의자'를 비롯해 이상문학상을 받은 최진영의 '구의 증명',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등 성교육과 무관한 문학 서적까지 폐기 도서에 포함됐다.
여러 학교 담당자는 지난해 11월 경기교육청에서 '성 관련 도서를 폐기하는 것을 권고한다'는 내용의 공문이 한 차례 내려왔고, 이어진 공문에서는 성교육 도서 처리 현황을 보고하라면서 '제적 및 폐기' 도서를 입력할 엑셀 파일이 내려왔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경기교육청은 유해성의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지난해 9월 보수 학부모 단체가 "학교 도서관에서 부적절한 성교육 도서를 폐기하라"며 연 기자회견을 다룬 기사 등을 참고하라며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학교 현장에서는 이 단체가 임의로 정한 '청소년 유해 도서' 목록을 교육청의 기준으로 받아들이고, 이 외에도 성과 인체에 관한 내용이 포함된 도서는 폐기 처분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경기교육청은 "일부 단체가 학교에 무분별하게 공문을 보내, 성교육 도서 폐기를 요구한 상황이었다"면서 "교육청은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현황을 단순 조사한 것이지 폐기하라는 지시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이런 가운데 한 누리꾼은 이날 국민신문고를 통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조속히 초·중·고등학교 도서관에 다시 배치하고, 청소년들의 권장 도서로 지정하여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는 내용의 민원을 경기교육청에 제기했다.
이날 스웨덴 한림원은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의 작가 한강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지난 2000년 평화상을 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