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 딸 작품이 어떤지 평가해달라고 하자 단호하게 말했다

2024-10-11 08:47

“작가로서 냉정히 평가해도 훌륭... 나를 뛰어넘었다”

한강 작가와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오른쪽) 2005년 한강 작가의 이상문학상 수상 당시 시상식 모습이다. / 문학사상사 제공
한강 작가와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오른쪽) 2005년 한강 작가의 이상문학상 수상 당시 시상식 모습이다. / 문학사상사 제공
소설가 한승원(85)은 딸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 “세상이 발칵 뒤집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며 놀라움과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전남 장흥군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승원은 1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딸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승원은 방송에서 “노벨상 심사위원들이 뜻밖의 인물을 찾아 상을 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우리 강이가 수상할 수도 있겠다는 만에 하나의 생각은 했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라면서 “딸이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당황했다”고 말했다. 관록의 작가에게마저 딸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충격이었던 셈이다.

한승원은 딸이 수상 발표 직전인 전날 오후 7시 50분쯤 스웨덴에서 직접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노벨위원회가 정말 무서운 사람들이다. 강이가 상을 받기 전 부모에게도 말할 기회 없이 바로 전화를 받은 것 같다”며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그는 딸의 문학세계에 대해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한승원은 “한강의 작품은 한국어로 표현된 비극을 그윽하고 서정적으로, 아름답고 슬프게 풀어낸다. 그 비극은 어디에서나 비극으로 통하지만, 한강은 그걸 감성적이고 예술적으로 승화한다”고 평했다. 그는 “특히 ‘채식주의자’에서부터 한강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같은 작품들이 국가 폭력과 트라우마를 다루며, 여린 인간들에 대한 깊은 사랑을 담아냈다. 아마 심사위원들이 그런 점을 높이 평가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승원은 딸의 문학적 성과에 대해 자랑스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강이의 소설은 하나도 버릴 게 없다. 모든 작품이 다 명작이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가 예쁘다고 하지만 강이의 작품은 그런 차원이 아니라 진정한 명작”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작가로서도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강이의 작품은 모두가 훌륭하다"고 덧붙였다.

한승원은 자신의 문학적 여정에 대해서도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그는 “나와 강이를 비교하는 건 어렵지만, 나는 대중적인 소설을 많이 썼고, 순수문학보다는 생활을 위한 작품 활동을 많이 했다. 그래서 나의 저작물 중에는 내세우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강이의 작품은 처음부터 다 명작이었다”라면서 “강이의 첫 작품 ‘여수의 사랑’을 읽었을 때 이미 나를 뛰어넘을 작가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1939년 전남 장흥군에서 태어난 한승원은 1968년 등단 후 ‘아제아제 바라아제’, ‘초의’, ‘달개비꽃 엄마’ 등의 장편소설과 시집 ‘열애일기’, ‘달 긷는 집’ 등을 발표하며 한국 문학계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이어온 거장이다. 그는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등 문학계의 여러 권위 있는 상을 받았다. 올해 초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장편소설 ‘사람의 길’을 출간하는 등 여전히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한승원은 전남 장흥군에 있는 ‘해산토굴’이라는 집필실에서 거주하며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딸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자신과 딸의 문학적 관계에 대해 다시 깊이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딸이 나를 뛰어넘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아온 삶과 비교해도 한강은 이제 나보다 더 위대한 작가가 됐다"고 말했다.

한승원은 인터뷰를 마치며 한강이 앞으로도 더 많은 훌륭한 작품을 통해 세계 문학계에 큰 족적을 남기길 기대한다고 했다. "강이의 작품은 이미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지만 앞으로 써나갈 이야기들이 더욱 기대된다"고 말했다.

<인터뷰 전문>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아버지 한승원 작가와 짧은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 내용을 잠시 들을 텐데요. 제가 제일 궁금한 건 소감이었어요. 소설가이자 아버지로서 이 소식을 듣고 어떠셨는지 직접 들어보시죠.

◇ 김현정> 한 명의 소설가로서 아버지로서 소감이 어떠셨어요?

◆ 한승원> 난 그 소식 듣고 당황했어요.

◇ 김현정> 당황하셨어요? 왜요?

◆ 한승원> 우리는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 김현정> 진짜요? 선생님 진짜요?

◆ 한승원> 기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혹시라도 우리 마나님이 안 되면… 나이 아직 어리니까.

◇ 김현정> 그렇지.

◆ 한승원> 몇 년 뒤에 탔으면, 좌우간 우리들이 살았을 때 탔으면 더 좋겠다, 그랬어요. 나는 어떤 생각이었냐 하면 뜻밖에, 뭐냐, 그런 노벨 문학상 심사위원들이 그런 사고를 잘 내더라고요.

◇ 김현정> 사고를 잘 내요?

◆ 한승원> 뜻밖의 인물을 찾아내서 수상한 그런 경우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래 왔는데 뜻밖에 우리 강이가 탈지도 몰라 그렇게 만에 하나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어도 전혀 기대를 안 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제가 그랬어요. 어젯밤에 한참 뒤에 소통이 돼가지고 우리 굉장히 당황하고 있고 50분에 전화를 받았대요. 스웨덴으로부터 7시 50분에 받고 15분 뒤에 기사를 내보낸 거죠. 그 사람들이.

◇ 김현정> 그럼 기사 내기 15분 전에야 수상자한테 알려준 거예요?

◆ 한승원> 그런 거죠. 그래서 그 사람들이 무서운 사람들이에요.

◇ 김현정> 무서운 사람들이네요, 진짜.

◆ 한승원> 그러니까 그 기쁨을 엄마, 아빠한테도 말할 기회가 없이 전화를 받고 그랬는가 봐요.

◇ 김현정> 얼마나 좋아해요? 우리 한강 작가님은?

◆ 한승원> 그런데 보니까 저도 실감이 안 나는 느낌이었어요.

◇ 김현정> 본인도 실감 못하는 느낌이었어요?

◆ 한승원> 그런데 어젯밤에 보니까 세상이 꼭 발칵 뒤집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 김현정> 가장 높이 평가하시는 건 뭘까요?

◆ 한승원> 정서, 어떤 분위기, 문장을 통한 그런 거 아닐까요? 그런데 한국어로선 비극이지만 그 비극은 어디다 내놔도 비극은 비극인데 그 비극을 어떻습니까? 비극을 정서적으로 서정적으로 아주 그윽하고 아름답고 슬프게 표현한 거죠. 그러니까 강이가 타게 된 것을 제가 살펴보니까 채식주의자에서부터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작가라고 아마 이야기 된 것 같아요. 그리고 그다음에 소년이 온다가 나왔고 그런데 그다음에 작별하지 않는다. 광주하고 4.3사태 그 연결이 되면서 국가라고 하는 폭력, 세상으로부터 트라우마를 느끼는 그런 것들, 그런 것들에다가 여린 인간들에 대한 어떤 사랑 같은 거, 그런 것들이 좀 끈끈하게 묻어나지 않았나.

◇ 김현정> 그런 부분.

◆ 한승원> 그러니까 그것을 심사위원들이 포착한 것 같아요.

◇ 김현정> 너무 대단합니다. 선생님, 우리 한승원 작가님 너무나 많은 상도 타시고 대중적으로도 인정받으시고 작가적으로도 인정받으시고 위대한 소설가신데 지금 한강 작가님이, 딸이 나를 뛰어넘었다라는 생각이 드세요?

◆ 한승원> 그렇죠. 왜냐하면 나하고 딸하고 비교한다는 게 좀 못하지만 내가 살아온 걸 보면 직업 없이 학교 선생 그만두고 소설을 쓰면서 써서는 안 되는 그런 대중적인 소설을 제가 많이 써서 밥벌이에 이용을 한 겁니다. 그리고 순수 소설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김동리 선생의 교육을 받으면서, 가르침을 받으면서 순수소설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소설을 쓰려고 애를 썼죠. 그러니까 제가 보면 어설퍼서 버리고 싶은, 내세우고 싶지 않는 내 저술들이 더러 있습니다.

◇ 김현정> 선생님께서는.

◆ 한승원> 그래서 그러한 저하고 강이 소설을 비추어 보면 강이 소설은 하나도 버릴 게 없어요.

◇ 김현정> 하나도 버릴 게 없어요.

◆ 한승원> 하나가 다 명작들이고 이게 고슴도치는 내 새끼가 예쁘다고 그래서 그런 것만은 아닐 거예요.

◇ 김현정> 아니죠. 그럼요.

◆ 한승원> 소설을 보는 한 냉정하게 봅니다.

◇ 김현정> 하나도 버릴 게 없다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여수의 사랑이라는 한강 작가의 첫 작품이 나왔을 때 그 한 문장을 읽으면서 내 딸 강이가 나를 뛰어넘겠구나라는 생각을 그 첫 문장에서부터 하셨다, 이 이야기도 뒤에 이어졌습니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