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간 한국인들이 자주 방문하는 아시아 국가 중 필리핀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살인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필리핀에서 발생한 한국인 살인 피해는 중국과 일본에서 발생한 총 피해 건수보다 2배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2023 국민여행조사'에 따르면, 필리핀은 한국인들이 자주 찾는 해외 여행지 중 하나다. 일본(42.9%), 베트남(21.7%), 태국(8.4%)에 이어 네 번째(5.5%)로 많이 방문하는 국가다. 이에 따라 필리핀에서 한국인 관련 범죄 사건도 빈번하게 보고되고 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아 7일 공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 필리핀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살인 사건 피해자는 총 38명에 이른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체에서 한국인 살인 피해자는 86명으로 집계됐다. 그중 필리핀에서만 44.2%에 해당하는 38명이 살해된 것이다. 필리핀에서의 피해자 수는 일본(13명), 중국(5명) 두 나라를 합친 것보다 2배 이상 많다.
필리핀에서 살인 사건이 유독 많은 이유는 치안 부재와 부패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필리핀은 정부 기관과 경찰 내부의 부패가 만연해 있어 범죄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필리핀 내 경찰 부패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며, 이는 재외국민 보호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2016년 한인 사업가 지익주 씨가 필리핀에서 납치·살해된 사건은 이러한 문제를 극명히 보여준다. 당시 사건의 주범은 전직 경찰 간부로 밝혀졌다. 이 주범은 8년 만에 항소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구속되지 않았다.
필리핀에선 살인 사건뿐만 아니라 강도, 강간, 납치 등 강력 범죄 피해도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10년간 아시아·태평양 재외국민 강력범죄 피해 현황'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총 1119건의 강력범죄가 발생했으며, 필리핀은 451건으로 두 번째로 많은 범죄 피해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필리핀은 살인 사건 피해자 38명, 강도 사건 피해자 102명으로 두드러진다. 중국에서는 살인 피해자가 5명, 강도 피해자가 19명이며, 일본에서도 살인 13명, 강도 3명으로 필리핀과 큰 차이를 보인다.
필리핀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필리핀의 경제적 상황과도 연관이 있다. 필리핀은 경제적 불평등과 빈곤율이 높은 나라 중 하나다. 필리핀 내에서는 한국인 사업가들이 주로 투자 대상이 되거나 고액의 몸값을 요구하는 납치 사건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필리핀 경찰과 군부의 부패는 이러한 범죄의 해결을 더디게 만들고, 이는 한국인 피해자들이 사건 이후에도 제대로 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필리핀에서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사업체가 많아 이들이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다. 특히 현지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한국인 사업가들은 종종 필리핀 내에서의 비즈니스 갈등이나 금전 문제로 인해 범죄에 휘말리는 경우가 있다. 필리핀의 법 집행 체계가 느리고 부패가 심각해 범죄자들이 처벌을 피해 도망가는 경우가 많아 이러한 문제가 악화하는 상황이다.
김영배 의원은 외교 당국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했다. 그는 "피고인의 신병 확보를 위해 외교부와 한국대사관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한다"며 필리핀에서 발생하는 범죄 사건에 대한 외교 당국의 대응이 더 철저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