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김성주 할머니가 9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6일 사단법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전날 오후 경기 안양 자택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1929년 전남 순천시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944년 14세의 나이에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로 강제 동원됐다. 일본인 담임 선생님의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권유에 속아 일본으로 떠났지만, 도착한 곳은 군수 물자를 생산하는 비행기 제작 공장이었다.
김 할머니는 그곳에서 굶주림 속에 철판을 자르는 고된 노동을 하던 중 왼손 검지 손가락을 잃었고, 임금도 받지 못한 채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또한 도난카이 지진으로 공장이 무너지며 발목에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
해방 후 고향에 돌아왔지만 일본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사회적 차별과 남편의 구박에 시달리며 평온한 삶을 누리지 못했다. 김 할머니는 위안부로 끌려간 것으로 안 지인들 때문에 평생 가슴 한 번 펴고 살지 못했다고 생전에 말했다.
뒤늦게 용기를 내 양금덕 할머니 등과 함께 일본을 상대로 소송에 나섰지만, 2008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했다. 2012년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의 도움을 받아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광주지법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2018년 11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미쓰비시는 배상 이행을 거부했고, 김 할머니는 이에 대응해 미쓰비시중공업의 특허권 2건을 압류했다.
김 할머니 동생 김정주 할머니도 1945년 일본 도야마 후지코시 공장으로 강제 동원됐다. 동생 역시 소송을 제기해 올해 1월 대법원에서 승소했고, 현재 후지코시 측의 배상 이행을 기다리고 있다.
김 할머니의 빈소는 안양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7일 오후 1시에 치러진다. 유족으론 2남 2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