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화국의 핵심 정치인이자 거물 정객이었던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전날 오전 8시10분께 서울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고인은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청주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그는 서울대 재학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아들 이강석 군의 서울대 법학과 부정 편입학을 규탄하는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이후 1958년 한국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진출해 조선일보 정치부장과 편집부국장, 서울신문 편집국장과 주필을 지냈다. 관훈클럽 총무를 맡기도 했다.
1979년 민주공화당 후보로 서울 강서구에서 제10대 국회의원이 된 것을 시작으로 13대까지 강서구에서 내리 4선을 역임했다.
1980년 민주정의당 창당에 참여해 정책위의장을 역임하는 등 전두환 정권의 핵심 정치인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김영삼 정부에선 노동부(현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낸 바 있다.
고인이 민정당 국회의원이던 1986년 국회 국방위 회식 사건이 터졌다. 육군참모총장 등 육군 수뇌부가 국방위 소속 의원들을 접대하는 자리였는데, 야당 의원과 장성 간의 말다툼이 그만 ‘난투극’으로 비화했다.
당시 고인은 여당 소속 국방 위원이었음에도 장성들의 무례한 행태를 질타했다가 구타를 당해 크게 다쳤다. 서슬퍼런 군사정권 시절 정치군인들이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얼마나 우습게 여겼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정치적 문제로 번지자 육군 지휘부가 사과하고 몇몇 장성은 군복을 벗었다.
고인은 정계에 입문한 이래 보수 정치인의 길을 걸었지만 진보와의 교류에도 애를 썼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고인의 회고에 따르면 1990년 국회에서 임수경 씨의 무단 방북과 관련, "방북자 구속 문제는 범죄에 대한 처벌 차원이 아니라 트래픽 컨트롤 즉, 교통 정리적 차원"이라고 발언했다.
노동부 장관 재임 당시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현대중공업 파업 현장에 공권력 투입을 자제해야 한다는 건의를 하기도 했다.
또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서도 내국인 근로자와 동등하게 노동관계법을 적용토록 하는 등 유연한 정책을 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같은 공로로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인 1995년 김 전 대통령으로부터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최근까지도 저술 활동에 몰두해 ‘내가 뭣을 안다고’(2024), ‘시대의 조정자’(2023), ‘진보 열전’(2016), ‘남재희가 만난 통 큰 사람들’(2014) 등 책을 펴냈다.
유족은 부인 변문규 씨와 4녀(남화숙 미국 워싱턴주립대 명예교수·남영숙·남관숙·남상숙)와 사위 예종영(전 가톨릭대 교수)·김동석(KDI 국제정치대학원 교수)씨 등이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꾸려졌다. 발인은 오는 19일 오전 5시 20분이며, 장지는 청주시 미원 선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