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프로야구는 새 역사를 썼다. 사상 첫 1000만 관중을 돌파하며 한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 자리를 굳건히 했다. 이는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43번째 시즌에 한국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초 위업을 세운 것이다. 추석 연휴 동안에도 야구 경기가 계속되므로, 경기가 끝난 후 무료한 저녁 시간을 보낼 10개 구단 팬들을 위해 야구 영화들을 소개한다.
■ 슈퍼스타 감사용
2004년 개봉한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은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원년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삼미 슈퍼스타즈의 투수 감사용의 인생을 그렸다. 배우 이범수가 감사용 역을 맡아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영화의 주인공인 감사용은 인천 공업단지의 삼미철강 공장에서 일하는 건실한 회사원이다. 그는 아마추어 야구팀에서 열정적으로 투수로 활약하며 틈나는 대로 투구 연습에 몰두하는 야구 애호가다.
어느 날 그가 일하는 회사에서 프로야구단 창단 소식과 함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공개오디션 공고가 나왔다. 감사용은 이 기회를 놓칠세라 오디션에 참가했으며, 인상적인 활약으로 삼미 슈퍼스타즈에 투수로 입단한다.
하지만 삼미 슈퍼스타즈는 이름과 달리 스타 선수가 부족한 팀으로, 개막과 동시에 꼴찌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감사용은 선발 등판 기회를 얻지 못하고, ‘패전 처리 전문 투수’라는 불명예를 지닌 채 패색이 짙은 경기에서 종종 마무리 투수로 출전해야 했다. 상대팀은 감사용이 나오는 것을 반가워 할 정도다.
그러던 중 감사용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기회가 찾아온다. OB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OB의 에이스 박철순의 20연승을 저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삼미의 투수진은 모두 출전을 꺼리는 상황이었다. 급기야 이 기회는 감사용에게 돌아오게 됐고, 그는 생애 처음으로 선발 등판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영화 속에서 감사용은 박철순과 치열한 경기를 펼치지만 끝내 패배했다. 이후 그는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첫 승을 거두며 꿈을 이루게 된다. 1987년 은퇴할 때까지 감사용의 성적은 1승 15패 1무 1세이브, 삼진 47개 방어율 6.09라는 결과를 남겼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개봉 당시 프로야구의 인기 부진과 다른 영화들, 특히 차승원 주연의 '귀신이 산다'와의 경쟁에 밀려 흥행에 실패했지만, 감동적인 이야기와 역사적인 장면을 담아내며 많은 호평을 받았다. 특히 이범수는 실존 인물 감사용을 뛰어난 연기로 소화해 큰 찬사를 받았다.
이 영화는 프로야구 선수가 된 감사용의 성공기를 그린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불가능한 꿈을 위해 달리는 사람의 모습 그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만드는 작품이다. 영화 속 감사용의 삶과 꿈은 성공 여부를 넘어서, 꿈을 좇는 과정에서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 퍼펙트 게임
2011년 개봉한 박희곤 감독의 영화 '퍼펙트 게임'은 1980년대 대한민국 프로야구를 뜨겁게 달군 두 투수, 최동원과 선동열의 치열한 대결을 그린 드라마다. 조승우가 최동원 역을, 양동근이 선동열 역을 맡아 열연했으며, 최정원, 마동석, 조진웅 등도 출연했다. 127분 분량으로, 네티즌 평점 8.95를 기록하며 누적 관객 수 150만 7084명을 돌파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최동원과 선동열의 마지막 대결은 단순한 스포츠 경기를 넘어서는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실제 1987년 5월 16일 벌어진 두 투수의 맞대결은 연장까지 15회, 4시간 56분 동안 진행돼 2-2 무승부로 끝났다.
박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당시의 경기와 함께 최동원과 선동열의 복잡한 감정을 사실감 있게 재현했다. 두 투수의 경기는 단순한 스포츠 대결을 넘어 지역주의와 학연으로 갈라진 사회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됐으며, 그들의 치열한 승부와 내면의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특히 두 선수의 인간적인 질투와 열등감까지도 세심하게 묘사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최동원과 선동열은 각각 1980년대 프로야구 역사에서 전설적인 존재였다. 최동원은 고교 시절 4연속 완투 우승, 한국시리즈 4승 등 믿기 어려운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선동열 역시 1985년 프로야구 입문 이후 역대 통산 최저 방어율인 1.20, 역대 최다 완봉승 29승 등 무지막지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두 선수는 라이벌이면서도 서로를 존경하며 친밀한 선후배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퍼펙트 게임'은 최동원과 선동열의 대결을 통해 그들의 경쟁과 우정, 그리고 인간적인 고뇌를 진솔하게 담아내며,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역사적인 순간들을 세밀하게 조명하고 있다.
■ 머니 볼
영화 '머니볼'(Moneyball)은 메이저리그의 판도를 바꾼 감동의 실화를 그린 작품이다. 브래드 피트가 단장 빌리 빈 역을, 조나 힐이 피터 브랜드 역,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아트 하우 역을 맡았다. 총 132분 분량의 이 영화는 메이저리그 최하위 팀이었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만들어낸 기적의 역전승을 다룬다.
영화는 실력 있는 선수들이 다른 구단으로 떠나면서 만년 최하위에 머물러 있는 가난한 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 재정적 어려움과 전통적인 스카우트 방식으로 인한 한계를 느낀 단장 빌리 빈은 기존의 선수 선발 방식을 완전히 뒤엎는 ‘머니볼’ 이론을 도입한다. 경제학 전공자인 피터 브랜드와 함께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새로운 팀 구성 방식을 채택한 그는, 사생활 문제, 잦은 부상, 나이 등의 이유로 다른 팀에서 외면받던 선수들을 영입한다.
'머니볼'은 빌리 빈의 실제 성공 스토리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제작 당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1998년부터 2015년까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으로 재직한 빌리 빈은 최하위팀이었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5번이나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며 야구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는 오로지 경기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선수들의 능력을 평가하고, 적은 비용으로 높은 효과를 낼 수 있는 선수들을 영입함으로써 140년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20연승이라는 혁신을 달성했다. 그의 이러한 혁신적인 접근 방식은 그를 야구계의 스티브 잡스라 불리게 했다.
'머니볼'은 이러한 빌리 빈의 혁신적이고도 감동적인 실화를 통해 스포츠와 데이터 분석의 경계를 허문 그의 업적을 조명하는 영화다.
빌리 빈은 2007년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최고의 메이저리그 단장으로 꼽혔으며, 미국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파워 엘리트 3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 그는 10년 동안 모든 스포츠 종목을 통틀어 가장 우수한 단장 10인 중 하나로 평가받아 세계적인 유명인사로 자리매김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슈퍼스타의 부재로 인해 단기전에서 번번이 패하며 우승컵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빌리 빈이 야구 역사에 남긴 발자취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 날 미치게 하는 남자
드류 베리모어가 주연을 맡은 영화 ‘날 미치게 하는 남자’(The Perfect Catch)는 패럴리 형제가 감독을 맡았으며, 영국 작가 닉 혼비의 자전적 소설 ‘피버 피치'(Fever Pitch)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은 아스날 FC의 열혈 팬들을 다룬 이야기였지만, 미국에서는 메이저리그 야구팀 보스턴 레드삭스를 응원하는 열혈 팬의 이야기로 로컬라이징됐다.
영화는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 벤(지미 팰론 분)이 현장 수업에서 유능한 비즈니스 컨설턴트 린지(드류 베리모어 분)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벤은 첫 만남에서 린지에게 강하게 끌려 데이트를 신청하게 된다. 둘은 외모와 월급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키워가지만, 봄이 찾아오면서 둘 사이에는 예상치 못한 갈등이 발생한다. 그 갈등의 주범은 바로 보스턴 레드삭스다. 벤은 24시간 레드삭스에 몰두하며 23년간 순애보를 지켜온 ‘골수팬’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구조를 따르듯, 영화 중반부터 두 사람 사이에 불화가 시작된다. 린지는 벤이 자신보다 레드삭스를 더 사랑한다고 느끼며, 벤의 아파트가 레드삭스의 기념품들로 가득 차 있는 모습에 놀라게 된다. 벤의 전화기조차 야구 글러브 모양이며, 벽장에는 정장보다 선수 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이 가득하다.
영화 초반 벤은 완벽한 남자로 묘사된다. 그는 린지가 아플 때 세심하게 보살피며, 자고 있는 동안 화장실 청소까지 해 놓는다. 그러나 야구 시즌이 시작되면서 벤의 태도는 급변한다. 모든 스케줄과 대화는 레드삭스와 관련되며, 그의 열정은 점점 집착으로 변해 간다.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지지만 벤은 자신이 레드삭스보다 린지를 더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후 벤은 린지를 다시 붙잡게 되고, 그들의 사랑은 해피엔딩을 맞는다.
재미있는 점은 원래 영화의 엔딩은 ‘레드삭스가 포스트시즌에서 패배해도 우리는 계속 응원한다’는 것이었으나, 촬영 중 레드삭스가 86년 만에 2004년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하면서 시나리오가 변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