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가 폭행해 중요 특허권 갈취한 박정희 정권 재판... 국가가 수십억 물어주게 됐다

2024-08-25 17:10

중앙정보부에 강제 연행된 피해자

박정희 정권 시절 한 발명가가 겪었던 가혹행위와 특허권 강탈 사건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다.

서울중앙지법 / Jisoo Song-Shutterstock.com
서울중앙지법 / Jisoo Song-Shutterstock.com

25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부장판사 이세라)는 최근 직물 염색기법 '홀치기'를 발명한 고(故) 신 씨의 유족에게 국가가 총 7억 4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금액에 지연 이자를 포함하면 국가가 유족에게 지급해야 할 금액은 23억 6000만 원이다.

재판부는 과거 신 씨가 승소했던 민사소송 금액과 지연이자,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 등을 반영해 배상액을 산정했다고 밝혔다.

신 씨는 일본에서 학업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후 1965년에 홀치기 염색 기법에 대한 특허를 등록했다. 해당 기술은 당시 염색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신 씨는 특허를 둘러싼 여러 소송에서 결국 승소하며 1969년에 특허권을 확정 지었다.

이후 신 씨는 홀치기 기법을 모방해 수출한 업체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 1심에서 5억 2200여만 원 배상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특허권은 국가의 이익이라는 명목하에 곧 빼앗기게 되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이 홀치기 수출업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신 씨의 특허권을 무력화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 씨는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중앙정보부에 의해 강제로 연행됐고, 이 과정에서 특허권 포기와 손해배상 소송 취하를 강요받았다.

신 씨는 결국 중앙정보부의 압박 속에서 소 취하서에 날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억울함은 법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채 수십 년이 흘렀다. 신 씨는 2006년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에 진실 규명을 요청했지만, 당시에는 각하(검토 자격을 갖추지 못해 돌려보내는 것) 결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신 씨는 2015년에 세상을 떠났고, 그의 자녀들은 2021년에 다시 진실규명을 신청하며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결국 과거사위는 지난해 "개인의 권리를 무시하고서라도 수출 증대를 국가 활동의 지상 목표로 인식한 대통령, 상공부 장관, 중앙정보부장 등이 기업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불법 체포, 폭력과 위협, 권리 포기 및 소 취하 강요 등의 불법적인 수단으로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사건"으로 규정하며 진실 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의 불법 체포와 감금, 가혹행위 등이 고의적인 불법행위라고 판단하며 그로 인해 신 씨와 그의 가족이 겪었을 정신적 고통과 재산적 손해를 인정했다. 또 이러한 사건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예방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home 방정훈 기자 bluemoon@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