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실험 여파로 인근 주민들이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일(현지 시간) 영국 매체 더 선은 2015년 북한을 탈출한 이영란 씨의 발언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이 씨는 “북한을 탈출하기 전까지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에 살았고, 내 아들은 이 유령병에 걸린 환자 중 한 명이었다”며 “길주에서는 항문, 발가락, 손이 없는 아이를 낳는 것이 일상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지역의 의사들이 정체불명의 질병 앞에서 무력감을 느꼈다”며 “유엔이 제공한 의약품은 북한 고위 관리들이 사재기하고 있고, 무료 의료 제공 약속과 달리 약국 선반은 텅 비어있다”고 밝혔다.
북한 핵실험장 인근에서 신생아의 항문, 발가락, 손이 없는 정체불명의 질병이 퍼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북한에서는 이 질병을 치료가 불가능한 '유령병'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북한의 핵실험 때 집이 흔들릴 정도로 폭발 지역과 가까운 곳에 살았던 이 씨는 폭발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3차 핵실험이 있던 날, 벽시계가 떨어지고 전구가 흔들렸다. 지진인 줄 알고 밖으로 뛰쳐나갔다”며 “정오에 북한 방송은 3차 핵실험이 성공 소식을 전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이 씨는 방송을 본 후 "그제서야 풍계리의 군 통제 지역이 핵실험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서 “주민들은 거리에서 춤을 추며 축하했지만, 그들은 북한 핵 프로그램의 첫 번째 희생자였다”고 폭로했다.
2014년 10월 27세의 아들이 미열 증세를 보이자 이 씨는 중국에서 밀수된 암시장 약품에 의존했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고 아들을 병원에 데려갔지만 의사는 “아들의 폐에 1.5cm와 2.7cm 크기의 구멍이 있다”고 하면서 “왜 점점 더 많은 청년 성인들이 병원에 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결국 이 씨는 아들을 잃었다. 그는 2015년 2월 탈북해 중국으로 넘어간 후 동년 8월 한국으로 온 뒤 적응 교육을 받고 연락 가능한 중개인을 통해 아들에게 돈을 송금했다.
이 씨는 “2018년 5월 저의 자랑이자 기쁨인 아들을 잃었다”며 “제 아들은 병원에 가서 제대로 된 진단을 받지 못한 채 죽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방사능 검사 결과, 노출 수준이 매우 높았고 백혈구가 매우 낮았다”면서 “여기저기 아프고 다리가 아파서 잘 걸을 수 없고 두통 때문에 1년에 여섯 번이나 입원했다”고 전했다.
북한의 핵실험장 인근 피폭 정황은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지난해 9월 ‘북한자유주간’ 행사 일환으로 서울 광화문 센터포인트빌딩에서 열린 ‘길주군 탈북민들의 핵실험 피해 증언’ 기자회견에서도 김순복(이하 가명), 남경훈 등 핵실험장이 있는 길주군 출신 탈북민들은 이 씨와 동일한 주장을 했다.
남 씨는 “동네에 환자가 늘고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났을 때 주민들은 귀신병에 걸렸다고 말했다”며 “당국에선 방사선 피폭 가능성은 얘기하지 않고 ‘고난의 행군’ 때문에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영향이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김 씨도 “군인들이 오기 전에는 살기 좋은 마을이었는데 점차 결핵, 피부염 환자가 늘었다. 사람들은 ‘귀신병’에 걸렸다며 무당을 찾아가곤 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편 통일부는 지난 2월 북한 풍계리 일대에서 원인 모를 질병이 발생하고 있다는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핵실험장 인근 8개 시군(길주군, 화대군, 김책시, 명간군, 명천군, 어랑군, 단천시, 백암군) 출신 탈북민 8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검진한 결과를 공개했다.
그 결과 풍계리 인근 지역 출신 북한이탈주민(탈북민) 일부의 염색체가 변형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