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선임 패싱당한 박주호, 과정 충격 폭로 “투표만 계속했다”

2024-07-08 20:35

홍명보 감독 선임 배경과 전력강화위원회의 내부 갈등 폭로

축구 국가대표 출신 해설위원 박주호가 국가대표 감독 선임 과정을 밝히며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 사퇴를 선언했다.

박주호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이 영상 촬영 도중 홍명보 감독의 축구 대표팀 내정 소식을 접한 뒤 깜짝 놀라고 있다. / 유튜브 '캡틴 파추호' 캡처
박주호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이 영상 촬영 도중 홍명보 감독의 축구 대표팀 내정 소식을 접한 뒤 깜짝 놀라고 있다. / 유튜브 '캡틴 파추호' 캡처

8일 유튜브 채널 '캡틴 파추호 Captain PaChuHO'에는 '"국가대표 감독 선임 과정" 모두 말씀드립니다.' 영상이 게재됐다. 해당 영상에는 축구 해설위원 김환이 게스트로 참석했다.

박주호는 자막을 통해 해당 영상 촬영이 지난 7일 오후 1시쯤 시작됐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자신이 전력강화위원회(이하 전강위)에 있었을 당시의 과정을 담담하게 토로했다.

박주호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경질 후 만들어진 전강위에 위원으로 참여했다. 정해성 전 전력강화위원장과 함께 5개월 동안 회의에 참여해 감독을 뽑기 위해 노력했는데 결과적으로 유명무실한 기구가 됐다고 정리했다.

박주호는 유력 후보였던 에르베 르나르 감독 계약 불발 이유에 대해 르나르 감독이 이미 검증된 건 알지만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고 싶어 하는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또 르나르 감독이 미팅을 앞두고 장소를 계속 바꾼 점에서도 적극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박주호는 정 위원장이 위원회에서도 2~3명의 감독을 추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자신은 감독 후보로 후벵 아모림, 제시 마치, 바스코 세아브라를 추천했다고 밝혔다. 대부분 1명을 추천하거나 아예 추천을 하지 않았다고.

제시 마치 감독 / X(구 트위터)
제시 마치 감독 / X(구 트위터)

그 중 가장 충격을 안긴 대목은 제시 마치 감독을 선임하려고 시도했을 때였다. 마치 감독은 2019~2020시즌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FC 레드불 잘츠부르크를 이끌 당시 유망주에 불과했던 황희찬, 엘링 홀란드, 미나미노 타쿠미를 적극 활용했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에서 리버풀 FC를 상대로 접전 끝에 분패했지만 탁월한 전술로 극찬을 받았다.

이후 독일 분데스리가 RB 라이프치히와 영국 프리미어리그 리즈 유나이티드에서는 선수단 장악 실패로 쓴 맛을 봤지만 여전히 기대주로 손꼽히는 감독 중 하나다.

그런데 박주호는 "마치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고 의지를 확인했다. 이후 추천을 했는데 처음에 다들 관심이 크지 않았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결과적으로 결렬이 돼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협상, 선임 여부를 떠나 한국 국가대표 에이스를 지도했던 감독의 이름도 몰랐다는 건 전력강화위원들이 해외 축구의 트렌드에 문외한인 '우물 안 개구리'란 뜻이기에 놀라움을 더한다.

축구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된 홍명보 울산 HD 감독 / 뉴스1
축구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된 홍명보 울산 HD 감독 / 뉴스1

녹화 중 대한축구협회가 홍명보 감독을 차기 감독으로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뉴스를 본 두 사람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명색이 전력강화위원인 박주호가 최소한의 통보 없이 패싱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후 박주호는 감독 선임과 관련해 여러 이야기를 가감 없이 이야기했다. 그는 K리그팀을 지휘하고 있는 국내 감독을 선임하는 것과 관련해 팬들의 불만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박주호는 "사실 저는 진작에 (전강위가) 폐지됐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제시 마치 감독과 협상이 결렬된 후 (전강위는) 무의미했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지난 달 초 몇몇 외국인 감독 접촉 후 결렬 이후 국내 감독 선임 기류가 있었던 것에 대해서도 전했다.

박주호는 "협회가 국내 감독을 원하자 정 위원장이 '그런 쪽으로 할 거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국내 감독을 세세하게 살펴보고 장단점을 체크해보자'고 했다"라며 "(표면적으로는 국내 감독 선임은) 다 아니라고 했다. 근데 속으로는, 회의가 끝나면 전화로 몇몇 분들이 위원장에게 말한다는 것을 들었다"고 밝혔다.

아울러 박주호는 20번 가까이 회의하는 동안 정 위원장이 다수결로 정하자는 뜻을 여러 번 내비쳤다고 전했다. 그는 “나는 황선홍 당시 U23 대표팀 감독의 임시 감독 부임을 반대했다. 괜한 리스크를 지지 말자는 취지였지만 별다른 대화 없이 투표로 결론이 정해졌고 그래서 황선홍 감독이 임시 감독이 된 것”이라고 밝혔다.

결정 과정에 대한 아쉬움도 고백했다. 그는 "임시 감독을 뽑을 때 무작정 투표하자고 했다. 그래서 내가 각자 그 이유를 설명하고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했는데도 결국은 투표처럼 됐다. 심지어 내부에서 사리사욕을 위해 자신이 임시 감독이 되려는 이도 있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정보도 계속 흘러나갔다. 위원회 안에 있는 저도 몰랐다. 저는 소모임까지 해서 한 20번 정도 (회의를) 한 것 같다"면서 "외국인 감독도 20명 넘게 봤다. 비디오로 훈련 과정, 미팅도 했다. 팬분들이 자세히 보고 있어 얼렁뚱땅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며 허탈함을 감추지 않았다.

또 회의 내용에 대해 유출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회의 중에도 선임과정이 언론에 공유됐다고 지적했다. 위원회 안에 있는데도 여러 추측이 난무하는 상황에 뭐가 진짜인지 헷갈릴 정도였다고.

박주호는 여러 지지부진한 회의 끝에 선임한 감독이 홍명보라는 것에 대해 "처음부터 이야기를 하면 된다. 그러면 일을 안 해도 됐다. 홍명보 감독을 어떻게 도와줄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다"라며 지난 5개월간의 시간에 대한 허무함을 드러냈다.

박주호는 홍명보가 대표팀 감독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기 때문에 다른 대안을 찾길 바랐다며 울산 팬들의 마음을 걱정했다.

한편 8일 대한축구협회는 홍명보 감독을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공식 발표했다.

home 이범희 기자 heebe904@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