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폭우 참사'… 장마 시작되는 지금, 다시 주목받고 있는 사연

2024-06-28 11:43

피해 유난히 컸던 '1998 지리산 폭우 참사'

이번 주말 본격적인 장마 예고된 가운데 재주목받고 있는 사연 하나가 있다.

자료사진. / CreativeZone-shutterstock.com
자료사진. / CreativeZone-shutterstock.com

이 사연은 지난 27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통해 '한여름 밤의 악몽'이라는 부제로 그려졌다. 바로 '1998 지리산 폭우 참사'에 대한 내용이다.

1998년 여름, 지리산의 아름다움은 한순간에 악몽으로 변했다. 7월 31일, 여덟 살 민수 가족은 지리산 대원사 계곡으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당시 IMF 경제 위기로 인해 많은 이들이 호텔이나 펜션 대신 야영을 선택했다. 이로 인해 대원사 계곡에는 1400여 명이 몰렸고, 근처 화개계곡에도 수백 개의 텐트가 늘어섰다.

그날 밤, 하늘은 갑작스러운 집중호우를 퍼부었다. 화개면사무소는 긴급히 야영객 철수를 지시했지만, 이미 물은 급격히 불어나 있었다. 공무원들은 서둘러 화개계곡의 야영객들을 대피시켰으나, 대원사 계곡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민수와 아빠는 텐트를 버리고 대피를 시도했다. 하지만 물은 더 빠르게 차올랐다. 아빠는 민수를 나무 위로 올려 보냈고, 자신은 계곡물에 휩쓸려 사라졌다.

폭우는 지리산의 강수량 기록을 갈아치웠다. 순천의 종전 최대 기록이 61mm였으나, 이날은 무려 145mm가 내렸다.

평지가 아닌 계곡에서의 피해는 더욱 심각했다. 마을 주민들은 나무에 매달려 있는 민수를 발견하고, 목숨을 건 사투 끝에 구조했다. 그중에서도 서적열 씨는 무려 30명을 구하며 영웅으로 떠올랐다.

다음 날 지리산은 참혹했다. 도로는 파헤쳐졌고, 소나무와 바위들이 떠내려갔다. 철도 선로가 유실되어 운행이 중단됐고, 사망·실종자는 103명에 달했다. 특히 민수의 아빠는 민수가 구조된 나무 바로 아래에서 텐트에 몸이 감긴 채 발견돼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구조 작업 중 또 다른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수십 시간 구조 작업에 매진하던 이정근 구조 반장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것. 그의 유가족들은 아직도 그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그 외에도 여러 의인들이 있었다. 20세 김규수 군은 30여 명을 대피시킨 뒤 마지막 사람을 구조하다 목숨을 잃었고, 32세 김영덕 씨는 50여 명을 구하고 목숨을 잃었다.

적열 씨는 구조 과정에서 무릎인대가 파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조 활동을 계속했다. 이후 그는 지리산 국립공원 직원으로 특채되었고, 20년 넘게 지리산을 지키며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빌었다.

26년 후, 민수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통해 적열 씨와 재회했다. 민수는 "그때의 기억은 제 인생에서 많이 배제되어 있었다. 구조대원이 아니셨던 분이 저를 구해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출연을 결심했다"라고 밝혔다.

적열 씨는 "잘 자라준 민수에게 고맙다"며 감사를 전했다. 민수는 "그날의 일들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지만, 적열 씨 덕분에 앞으로 살아가는데 큰 힘을 얻었다"며 진심을 전했다.

지리산 폭우 참사는 천재지변이었지만, 대피 지시 지연과 야영 금지 구역에서의 야영이 피해를 더 키웠다. 이후 지리산은 야영 금지 구역을 강화하고, 관리공단의 교육과 재난 안전관리 시스템을 확대했다. 26년간 폭우로 인한 인명 사고는 없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998 지리산 폭우 참사 편. /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998 지리산 폭우 참사 편. /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home 권미정 기자 undecided@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