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에서 승용차로 10대 아동의 발을 치고도 본인 연락처가 아닌 자신의 자녀 이름만 알려주고 도주한 40대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6단독 최민혜 판사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치상) 혐의로 기소된 A(43) 씨에게 벌금 1200만원을 선고했다.
A 씨는 지난해 7월 7일 오후 6시 5분쯤 승용차를 운전해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건물 주차장에서 나와 횡단보도로 진입하다 그곳을 지나던 B(12) 양의 오른쪽 발을 밟고도 조치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고 당시 B 양을 뒤늦게 발견한 A 씨는 급제동을 했지만, 미처 피하지 못하고 B 양의 발을 밟아 전치 2주의 타박상을 입혔다.
B 양이 "발이 아프다"고 호소했지만, A 씨는 발등을 살펴본 뒤 자신의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고 첫째 아들의 이름만 전한 채 그대로 현장을 벗어났다.
A 씨는 재판 과정에서 "아들과 B 양이 모두 문화센터에 다니기 때문에 아들 이름을 알려주면 문화센터에 그 이름을 말해 자신의 연락처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라며 도주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당시 피고인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어 피해자의 부모님에게 연락할 수 있었음에도 아들의 이름만을 미성년자인 피해자에게 알려줬다"며 "피해자의 나이와 당시 심리 상태에 비춰 피해자가 피고인 아들의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존재했고, 실제로 피해자가 이름을 착각해 사고자를 특정할 수 없었던 상황이 초래된 점을 종합하면 도주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범행 경위, 방법, 범행 후 피고인의 태도 등에 비춰 죄책이 무거운데도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부모와 피고인 사이의 통화 내용에 의하면 피고인은 이 사건 직후 자녀를 학원에 데려다주기 위해 제대로 사고 처리를 하지 않은 것을 보인다"고 질타했다.
이어 "피고인은 이 사건으로 면허가 취소돼 자녀를 학원에 데려다주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을 뿐"이라며 "미성년자인 피해자 및 피해자 부모가 겪은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대해서는 도외시하며 진정으로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와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피해자 측에서 피고인의 처벌을 희망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피고인이 아무런 범죄 전력도 없는 초범인 점, 범행 동기와 경위, 결과 등을 고려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