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국가대표팀의 차기 사령탑 선임 작업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 지난 2월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 경질 이후 대한축구협회는 약 4개월째 새 감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수개월의 물색 과정 동안 몇 명의 외국인 지도자들 이름이 후보군 명단에 오르내렸지만, 결국 돌고 돌아 국내 지도자가 유력 후보로 떠오른 상황이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는 지난 21일 서울에서 비공개회의를 열어 차기 감독 후보군을 논의했다. 앞서 18일에도 회의를 진행하며 감독 선임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전력강화위원회는 초기 12명의 후보군을 선정했으나, 추가 지원자를 포함해 총 16명으로 후보군이 늘어났다.
그동안 축구협회는 세계 축구의 흐름을 잘 이해하는 외국인 감독을 선호했다. 그러나 유력 후보였던 제시 마쉬 감독이 캐나다 대표팀 사령탑으로 부임하는 등 협상 과정에서 난항을 겪으면서 국내 지도자로 눈을 돌리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협회는 연봉과 국내 체류 기간 등 세부 조건을 조율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클린스만 전 감독의 위약금과 천안축구종합센터 건설비용 등 재정적 부담도 겹쳤다.
현재 후보로 거론되는 국내 지도자는 홍명보 울산 HD 감독과 김도훈 감독이다. 홍명보 감독은 울산을 K리그1 2연패로 이끌며 탁월한 지도력을 입증했다. 그는 2009년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8강 진출을 이끌었고,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한국 축구 사상 처음으로 동메달을 따낸 경력이 있다. A대표팀을 이끌고 나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아픔을 겪었지만, 북중미 월드컵에서는 이러한 경험이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또한 그는 축구협회의 전무이사를 역임하며 행정 경험도 풍부하다.
김도훈 감독 역시 유력한 후보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최근 임시 사령탑으로 대표팀을 이끌며 북중미 월드컵 2차 예선에서 싱가포르와 중국을 상대로 각각 7 대 0, 1 대 0 승리를 거두는 등 좋은 성적을 냈다. 역량을 인정받아 차기 사령탑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김도훈 감독이다.
외국인 감독도 여전히 후보에 올라 있지만, 현실적으로 선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제시 마쉬, 세뇰 귀네슈, 헤수스 카사스 등 다양한 외국인 감독이 후보군에 포함됐으나, 연봉과 계약 조건 문제로 협상이 순조롭지 않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한축구협회는 최근 'Made In Korea'라는 이름으로 기술철학을 발표하며 대표팀 경쟁력 강화 전략을 공개했다. '빠르고(Fast), 용맹하게(Fearless), 주도하는(Focused)'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국 축구만의 색깔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전력강화위원회는 이번 주 내로 감독 선임을 마무리 짓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오는 9월부터 시작되는 북중미 월드컵 3차 예선을 앞두고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문제로 인해 결국 국내 지도자로 시선이 쏠리자, 일부 전문가는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박문성 해설위원은 지난 24일 뉴시스와 통화에서 "후보군을 추가로 검토하는 것 자체는 괜찮다. (하지만) 협회가 6월 말에서 7월 초로 잡은 (감독 선임) 타임 테이블을 맞추기는 쉽지 않다"며 현재 흐름에 대해 냉정하게 짚었다.
그러면서 "넉 달 동안 감독 선임을 못하고 있는 건 정보력과 협상력이 문제 되고 있는 것이다. 여태까지 미뤄진 것도 협상 기술이나 정보 등이 부족해서 끌려간 것"이라며 이제 와서 국내파 감독이 다시 거론되는 상황 자체에 대해 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어 "한국 감독 자체가 잘하냐 못하냐 여부를 떠나 마치 스페어(예비용)처럼 느껴지고 있다. 힘을 실어주기 힘들다. 누가 와서 잘할 걸 논의하기 전에 계속 판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며 깊은 우려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