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성이 친구들과 성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유서로 고백하며 수사가 시작된 성범죄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이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특수준강간) 혐의로 기소된 남성 3명, A·B·C 씨의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7일 밝혔다.
대법원이 이런 판결을 내린 배경에는 D 씨가 범죄 사실을 고백하며 남겼던 유서를 증거로 볼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20대 남성 D 씨는 지난 2021년, 자신이 중학교 3학년이었던 14년 전에 한 살 어린 여학생에게 술을 먹인 뒤 친구들과 함께 성폭행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사망했다.
경찰은 유서를 토대로 수사에 돌입했고, D 씨의 친구들 3명은 특수준강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피해자는 당시 성범죄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D 씨 친구들은 모두 성범죄 사실에 대해선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1심은 유서의 증거 능력이 없다고 보고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 법원은 △D 씨의 우울증 등 불안정한 심리상태 △유서 내용과 피해자의 진술 일부 배치 등을 이유로 유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은 D 씨의 유서가 증거 능력이 있다고 보고 피고인들에게 징역 2년 6월형의 유죄 판결을 내렸다. 2심은 "이 사건 유서는 D 씨가 친구 A·B·C 씨와 함께 술에 만취한 피해자를 강간했다는 것으로 중대한 범행을 고백하는 내용"이라며 "피고인들에게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이 아니라 유서 내용의 진정성이 뒷받침된다"고 설명했다.
2심의 이런 판결은 대법원에서 다시 '무죄'로 뒤집혔다. 대법원은 "해당 유서는 그 작성 동기가 명확하지 않고, 수사 기관에서 작성 경위나 구체적인 의미가 상세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며 "사건 발생일로부터 무려 14년 이상 경과된 후 작성됐고 주요 내용이 구체적이거나 세부적이지 않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D 씨가 작성한 유서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원심의 판단에는 형사소송법 제314조의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