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나라 살림 성적표가 나왔다. 총선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발표를 미뤘던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에게 확신을 심을 정도로 성적이 안 좋다. 한마디로 ‘낙제점’이다.
정부는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열고 '2023 회계연도 국가결산 보고서'를 심의·의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87조원 적자다. 전년 결산보다 30조원 줄긴 했지만 지난해 예산안 발표 때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58조2000억원 규모라고 밝힌 걸 고려하면 좋은 성적을 매길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지난해보다 높았던 때는 코로나19 사태 때인 2020년(5.8%), 2021년(4.4%), 2022년(5.4%)과 외환 위기 때인 1998년(4.6%)뿐이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7월 재정운용기조를 확장재정에서 건전재정으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밝힌 바 있다.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까닭인지 초고강도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나라살림 적자를 GDP 3% 이내에서 관리하고 국가채무를 50% 중반대에서 관리하겠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윤석열 정부는 주요 선진국의 재정건전성 관리 기준을 고려해 설정했다는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지난해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4%에 육박하는 3.9%나 된다. 국가채무 상황도 악화했다. 중앙정부 채무와 지방정부 채무를 더한 국가채무는 1126조 7000억원이다. 2022년과 견줘 59조 4000억원 늘어난 수치다. GDP 국가채무 비율은 50.4%. 사상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정부는 경기 불황에 따른 역대급 세수 펑크로 원인을 돌렸다. 민생 회복, 경제활력 지원을 위해서 재정이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란 것이다.
정부에 따르면 국세수입은 전년보다 51조 9000억원 줄어든 344조 1000억원에 그쳤다. 애초 국세수입 예산으로 잡은 400조 5000억원보다 56조 4000억 원이나 적은 수치다.
문제는 올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단 것이다. 고물가·내수부진애 더해 저출산·고령화 등 정부 지원이 시급한 과제까지 산적한 까닭에 재정수지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더욱이 윤 대통령은 총선을 앞두고 민생토론회에서 감세 정책과 각종 지원 정책을 쏟아낸 바 있다. 약속을 지키면 재정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우려가 있다. 올해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4%를 넘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올해 국가결산 발표일은 이례적이다. 국가재정법이 명시한 '4월 10일'을 넘겼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동안 4월 첫째 주 화요일에 국무회의를 열어 국가결산 안건을 의결했다. 10일이 휴일이면 그 전에 국무회의를 열어왔다. 낙제점이 적힌 성적표가 나오면서 정부가 총선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미리 의결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일정을 뒤로 미룬 것이 미심쩍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