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주목해야 할 소식이 떴다.
호흡기계 전염병인 백일해가 현재 유럽 전역을 덮쳤다. 백일해가 유럽에서 유행한 건 빅토리아 시대(1837~1901) 이후 수백 년 만이라고 한다.
최근 몇 달 사이 영국, 스페인, 체코, 덴마크, 벨기에, 네덜란드, 크로아티아 등 국가에서 백일해 환자가 급증했다고 미국 일간지 폴리티코가 7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백일해는 그람 음성 박테리아인 보르데텔라 백일해균(Bordetella pertussis에 감염돼 발생하는 호흡기 질환으로, 전염성이 높은 감염병 중 하나다.
대개 여름과 가을에 발병이 증가하며, 백일해 환자와의 직접 접촉, 기침·재채기 등에 의한 호흡기에 의해 전파된다.
감염되면 처음엔 콧물, 인후통 등 감기와 비슷한 증세를 보이다 '흡'하는 호흡기 소리, 기침 발작, 구토로 발전할 수 있다. 호흡 곤란을 호소하는 환자도 있다.
예방 접종으로 인해 발병률은 감소하는 추세지만, 나이가 어릴수록 사망률이 높은 탓에 발병에 주의해야 한다.
이에 한국은 물론 대부분 유럽 국가에서는 생후 2~12개월 사이 영유아에게 백일해를 포함, 디프테리아, 파상풍 혼합 백신 접종을 하고 있다. 임산부 역시 출산 전 백일해 예방 접종을 한다. 산모가 백신을 접종하면 항체가 태반을 통해 태아에게 전달되고, 아이에게도 면역이 형성돼 태어난 뒤 백일해로 사망할 확률이 현저히 낮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에 따르면 올해 유럽연합(EU) 등에서 발생한 백일해 감염 사망자의 대부분은 생후 3개월 미만의 아이였다.
가장 전염 속도가 빠른 국가는 크로아티아로, 올해 1분기 보고된 환자 수는 6261명(총인구 398만 6627명·올해 통계청 기준)에 이른다.
6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의 백일해 발생률을 보이는 체코는 백일해 백신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고 한다.
영국의 상황도 심상치 않다. 영국 보건안보국(UKHSA)에 보고된 지난해 영국 내 백일해 감염 사례는 총 853건이었는데, 올해 1~2월 두 달간 이미 1466건을 넘어섰다.
유럽 내 백일해 환자가 증가한 배경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사태가 영향을 미쳤을 거란 관측이 나온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백신 접종에 대한 부정 여론이 높아졌고, 이로 인해 백일해 백신 접종률까지 떨어졌다는 게 ECDC의 분석이다.
실제로 유럽 내 백일해 예방 접종률은 팬데믹 이전보다 확 낮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의학저널(BMJ)에 실린 '영국과 유럽에서 백일해 급증'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2017년 9월 임산부의 백일해 백신 접종률은 70% 이상이었으나, 지난해 9월 기준 58%로 떨어졌다.
ECDC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백일해가 현재 급증하는 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혈액 순환 감소, 특정 집단의 주장과 연관돼 있다"고 발표했다.
마이클 헤드 사우샘프턴대학교 의과대학 연구원은 이 일과 관련 "팬데믹 이후 백신 반대론자들이 백신에 관한 잘못된 정보를 퍼뜨렸고, 잘못된 정보가 유럽인들로 하여금 백신 접종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백일해는 DPT 예방접종(디프테리아·백일해·파상풍 예방 백신)을 통해 예방할 수 있다.
접종 대상은 모든 영유아, 청소년, 성인 등이다. 성분 항원량에 따라 백신의 형태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어릴 때 기초 접종을 완료한 18세 이상 성인에겐 10년마다 접종이 권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