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황제'라 불리는 이탈리아 출신의 거장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23일(현지시간) 북부 도시 밀라노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82세.
코리에레 델레 세라 등 현지 언론매체들은 아내 말리사와 음악가인 아들 다니엘레가 고인의 임종을 지켰다고 보도했다.
생전 고인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은 "폴리니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음악가 중 한 명이자 50년 넘게 극장의 예술적 삶에서 근본적인 기준이 된 인물"이라고 고인의 별세를 안타까워했다.
건축가인 지노 폴리니의 아들로 1942년 밀라노에서 태어난 폴리니는 5세에 피아노 건반을 두드렸고, 1960년 18세의 나이로 세계 최고 권위의 쇼팽 국제 피아노콩쿠르에서 만장일치로 우승하며 세계 클래식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이던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저 소년이 기교적으로 우리 심사위원들보다 더 잘 친다"라고 극찬했다.
이후에도 실력을 갈고닦아 완벽하고 깔끔한 테크닉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악보의 X선 사진과 같은 연주"라고 평가할 정도로 악보의 모든 음을 극도로 정확하게 연주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정확한 연주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1963년 영국 런던에서 데뷔했을 때는 "음표, 그다음 음표를 제대로 연주하는 데에만 집착하며 달려간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폴리니는 특히 '쇼팽의 정석', '쇼팽의 대명사' 등으로 불릴 만큼 쇼팽 음악에 가장 정통한 연주자로 평가받았다.
베토벤, 슈만에 이어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 등 현대 음악가로 레퍼토리를 확장했지만, 쇼팽 연주는 늘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안사(ANSA) 통신은 60년이 넘는 활동 기간에 폴리니가 어디서 누구와 함께 연주했는지 일일이 나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그가 고령에도 왕성한 연주 활동을 펼쳤다고 전했다.
그는 예술계의 노벨상이라 일컬어지는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을 비롯해 일본 프래미엄 임페리얼상, 영국 로열필하모닉협회 음악상, 그래미 어워즈, 디아파종상 등 저명한 음악상을 다수 받았다. 2020년 3월에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프로젝트의 끝을 장식하는 앨범을 선보였다.
폴리니는 지난해 4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사상 첫 내한 리사이틀을 할 예정이었으나 건강 문제로 취소됐다.
그는 2022년 5월에도 예술의전당에서 두 차례 내한 리사이틀을 열기로 했으나 기관지염 악화로 취소했다.
당시 한국 관객에게 보낸 서한에서 그는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해 예술의전당 공연을 고대하고 있었지만, 건강상 문제로 여행을 할 수 없기에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른 시일 내에 한국 관객분들을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지만 끝내 국내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폴리니의 장례식은 고인이 평소 애착을 가졌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