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사람들은 탑골공원 가서 장기 두며 시간을 보내는 대신 공부를 소일거리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지난달 방송통신대 국문과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한 불교인권위원회 공동대표 진관스님은 76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또 졸업장을 받은 소감을 최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대학도 졸업하고 사회 활동을 하다 정년 퇴임한 할아버지들이 (탑골공원에) 많이 온다. 거기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을 보면 매우 안타깝다"며 노년에도 배움을 지속하는 삶을 제안했다.
진관스님은 "노인복지와 관련된 것도 있고 여러 가지 학과가 있다. 학비도 그리 비싸지 않고 컴퓨터만 조금 사용할 줄 알면 수업받기 쉽다"며 참여를 독려했다.
진관스님은 1980년대에 민주화를 위해 행동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1987년 박종철 열사 치사 사건에 항거하다 석 달가량 구속됐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호헌 방침 철회를 요구하며 서명했고 1989년에는 이철규 열사 사망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면 단식하기도 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가 살아온 길은 학업의 연속이기도 했다. 젊은 시절 동국대 불교학과,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광주대 사회학과를 다녔고 조선대에서 국어교육전공 석사, 동국대에서 통일정책 전공 석사 학위를 받았다.
또 중앙승가대에서 이승만 정권 시절 불교정화운동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고 동국대에서는 백용성 스님에 관한 연구로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진관스님을 20년 넘게 곁에서 지켜 본 범상스님은 "민주화운동 세력이 과실을 챙기던 시기가 있었는데 진관스님은 '민주화 운동했으면 그만이지 세상이 바뀌었다고 자리를 챙기면 안 된다'며 학문의 길을 택한 것"이라고 진관스님의 남다른 학구열의 배경을 설명했다.
박사학위를 2개나 보유한 그가 뒤늦게 방통대 학사 학위를 다시 받은 것은 예전에 벌려놓았다가 마치지 못한 숙제를 마무리하는 의미가 있었다.
국문학을 공부하려고 2007년에 방통대 학사과정에 편입했는데, 생각보다 학점을 따기가 쉽지 않았고 인터넷 등을 이용한 수업에 익숙하지 않아 따라가지 못하고 중단한 것이다.
방통대를 중도에 포기한 뒤 다른 학교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스님은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소통이 일반화된 후 용기를 내 방통대에 복학해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모두 채웠고 마침내 지난달 졸업증서를 받았다.
15세에 출가해 절밥 경력이 60년을 넘긴 스님이 세인들에게 공부를 권하는 것은 배우는 기쁨이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시험을 봐도 점수도 잘 안 나왔고 여러 가지 일로 바빴는데, 복학한 후로는 요령이 생겨서 공부에 탄력이 붙었어요. 배우는 일이 무엇보다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