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료사고에 대한 의료인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을 추진하는 가운데 29일 관련 공청회가 환자들의 극심한 반발 속에 열렸다.
보건복지부와 법무부는 이날 국회도서관에서 공청회를 열고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에 대한 환자단체와 의료계, 법학계, 언론계 등의 의견을 들었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의료인이 책임보험·공제에 가입하면 의료사고에 대한 공소 제기를 면제해주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다.
특히 필수의료 분야에서는 의료인이 과실로 환자 사망사고를 냈더라도 보상한도가 없는 '종합보험·공제'에 가입했다면 형을 감면받을 수 있게 해 의사들을 필수의료로 유도하기 위한 '당근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날 공청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박진식 대한중소병원협회 부회장은 "심장내과 전문의로서 심근경색 환자 등 최중증 응급환자를 진료하면서 지난 20여년간 의료현장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고 느끼고 있다"며 "선배들이 중증 환자를 치료했다가 몇 년씩 의료분쟁에 시달리는 것을 보며 성장한 후배 의사들은 중증 환자 치료는 못 하겠다며 포기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의사들은 항상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하지만 의사도 인간인지라 실수할 수도 있고, 급박한 수술의 경우 짧은 시간 안에 여러 가지 판단을 하다 보니 환자의 병력 등을 놓쳐서 환자에게 합병증이 생기기도 한다"며 "이 법이 의료계에서 완전히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단계로 필요한 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학 박사인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 전문기자는 "이 법 자체가 의사에 대한 특혜라는 지적이 있지만, (의사들이 응급이나 중증 의료 분야를 기피하는) 현실을 감안해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며 "의료계 역시 이러한 특례법까지 만들어주면서 의사를 보호하려고 하는 점을 고려해 (법이) 부족한 면이 있더라도 포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하지만 환자단체는 이 특례법에 의료사고에 대한 환자의 입증 책임을 완화하는 조항이 없어 피해자인 환자를 보호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은영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이사는 "의료사고 피해자는 의료적 전문성과 정보 비대칭성을 특징으로 하는 의료 행위에 대해서 의료 과실과 의료 사고와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워 의료 분쟁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약자"라며 "의료적 전문성을 가지고 직접 의료 행위를 한 의료인이 의료 과실이 없거나, 의료사고와 인과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도록 입증 책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은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하고 교통사고 방지 노력을 게을리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받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참고해 만든 법안"이라며 "위헌인 법률은 참고해 위헌적인 법률을 제정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의료사고 피해자들은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의사들을 달래기 위해 졸속으로 특례법을 제정하려고 한다며 크게 반발했다.
아버지가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암 치료를 받다가 의료사고로 돌아가셨다고 밝힌 한 참석자는 "선의를 가져도 과실이 있을 수 있는 거고, 그걸 처벌하는 규정이 업무상 과실치사상이라는 죄목"이라며 "경찰관이나 소방관 등 다른 직역에 종사하는 분들은 구조 의무가 법적으로 있어도 매뉴얼에 따라 사람을 구하지 못했을 때 과실치사로 처벌받지 않느냐"며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직업 간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공청회에 참석한 한 대학병원 심장내과 의사는 "환자가 죽거나 큰 손해를 입지 않았는데도 단순한 시술이 실패한 것을 두고 의사에게 민원을 제기하는 게 오늘날의 현실"이라며 "특례법이 제정되면 오히려 더 많은 민원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 서두르지 말고 사회적 협의와 보완을 거쳐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