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 이하(U-23) 올림픽축구대표팀 황선홍 감독이 위르겐 클린스만을 이어 A매치 대표팀 임시 사령탑으로 낙점됐다.
장해성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위원장은 27일 "다음 달 태국과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2연전(3월 21일·26일)에 대표팀을 이끌 임시 사령탑은 황선홍 감독"이라고 발표했다.
황선홍은 1988년부터 한국 대표팀의 스트라이커 생활을 시작했으며, A매치 통산 103경기 50골로 득점 2위에 올랐다. 홍명보와 함께 한국 축구 사상 첫 월드컵 4회 연속 출전이라는 기록을 가졌다.
1968년생인 황선홍 감독은 올해 55세로,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명 입침리에서 태어났다.
건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1991년 K리그 드래프트 제도를 거부하고 차범근이 활약했던 독일 분데르시가 소속의 레버쿠젠 2군 리저브팀에서 클럽 경력을 시작했다.
1992년 2부리그로 이적한 후에는 5경기에서 3골 3도움을 보이는 등 활약했으나, 6번째 경기에서 십자인대가 파열된 후 6개월 동안 재활을 했다. 그러나 다시 무릎 연골 파열로 인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때 포항제철 아톰즈는 완산 푸마와 트레이드를 하면서 자신들의 소속 팀 선수 8명을 황선홍 한 명과 바꾸는 거래를 제안했다.
황선홍은 1993년부터 1998년까지 포항에서 활약하며 1990년대 황금 라인의 한 축을 이뤘다. 당시 황선홍은 "나와 라데의 투톱을 능가하는 투톱은 이후로 K리그에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1995년에는 8경기 연속골 기록과 함께 11골 6도움을 기록하며 득점 3위에 올랐다.
1998년에는 J리그 세레소 오사카로 이적해, 다음 해 1999년에는 시즌 26골로 J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이는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한국인 선수가 외국 리그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사례다. 또한 J리그 유일한 한국인 득점왕으로, 현재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는 무릎 부상이라는 악재를 겪었으나, A매치 한일전으로 복귀해 결승골을 넣고 승리를 가져왔다. 당시 차범근 감독은 "황선홍은 현재 대표팀 전력의 50%를 차지하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중국과 친선경기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고 월드컵 본선에서 뛰지 못했다.
2000년에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부상 등으로 인해 리그에서 활약상을 보이지 못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도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며 4강 신화를 이끌었다. 특히 16강전에서 설기현의 동점골에 기여하며 활약했다. 같은 해 11월 20일에 열린 브라질과의 평가전에서는 홍명보와 함께 국가대표 은퇴 경기에 출전했다.
2003년 현역 선수 은퇴를 선언하고 지도자의 길을 시작한 황선홍은 전남 드래곤즈 2군 코치로 취임 후 본격적인 지도자 수업을 받기 시작해, 2006년 전남 드래곤즈 1군 수석코치에 올랐다.
2008~2010 시즌에는 부산 아이파크 감독을 연임했으며, 2011~2015 시즌에는 포항 스틸러스 감독을 맡았다. 이 시기에 황선홍은 2012, 2013 FA컵과 2013 K리그 클래식 우승이라는 성취를 냈다. 2016년에 FC서울 감독을 맡은 시즌에 곧바로 K리그 클래식 우승을 만들었다.
2021년부터는 대한민국 U-23 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항저우 아시안 게임, 2024 파리 올림픽을 이끌게 됐다. 초반 아시안컵에서는 일본 대표팀에게 참패하며 위기를 맞고, 평가전에서도 좋은 평가가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2023 아시안 게임에서 일본을 상대로 2:1 역전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U-23 대표팀의 프랑스와 평가전에서도 3:0으로 승리를 거뒀다.
아내 정지원과는 1993년 결혼해 슬하에 1녀 2남을 두고 있다. 특히 맏이이자 장녀인 황현진은 '이겨'라는 예명으로 걸그룹 예아(Ye-A)로 데뷔했다. 현재는 연예계를 은퇴하고 대학 졸업 후 호텔 관련 직장을 다니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