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린성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 약 2000명이 최근 북한당국의 임금 체불에 항의하며 파업과 폭동을 일으킨 것은 북한 정권의 주민 통제력 상실을 상징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탁민지 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 연구원은 지난 20일 펴낸 '중국 지린성 북한 해외노동자 집단 파업 사태의 함의: 해외 파견 노예 노동의 위기'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이처럼 주장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북한 국방성 산하 무역회사가 파견한 노동자 2000여명이 지난달 11일부터 4일간 지린성에 위치한 의류 제조공장과 수산물 가공공장 등의 시설을 점거하며 파업을 벌였다고 최근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노동자들이 장기임금 체납에 반발해 인질극까지 벌이는 과정에서 1명이 사망했다. 북한당국이 국가보위성 요원을 급파해 주도자 100여명을 송환하며 사태가 일단락됐다.
탁 연구원에 따르면 북한당국은 해외에 파견한 노동자들에 대해 현지 회사가 지급한 임금의 70~90%를 국가계획분과 북한 측 회사 운영비 등의 명목으로 원천징수한다. 노동자들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일상을 통제하고 여권 등 신분증을 압수하며 외부와의 접촉을 금지한다.
지린성에서 발생한 북한 노동자 파업의 직접적인 원인은 수년 동안 이루어진 북한 당국의 임금 체불이다. 북한 회사가 중국 측으로부터 받은 임금을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것을 코로나19 사태를 핑계로 몇 년간 유예해 왔으나 실제로는 본국에 ‘전쟁준비자금’으로 송금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노동자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탁 연구원은 이번 사태에 대해 "북한 당국의 가혹한 인권 침해에 대한 주민들의 인내심이 임계점에 도달한 결과"라며 "집회·시위의 자유가 억압된 북한 사회에서 1000명 단위 노동자가 파업에 참여한 것은 대단히 충격적인 방식이다. 북한판 노동운동의 태동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을 비롯한 북한 주요 매체는 해당 사건이 주민들에게 미칠 파장을 방지하기 위해 관련 내용을 전혀 보도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탁 연구원은 ▲개인이 아닌 집단 차원의 반발이 이뤄졌다는 점,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입은 손해에 대해 북한당국에 직접 책임을 지라고 요구했다는 점에서 지린성 집단파업이 주목을 모은다고 했다.
탁 연구원은 “지린성 집단 파업은 기존 북한 사회에서 이뤄지던 주민의 일탈 및 저항과 그에 따른 북한 당국의 수습 형태와 비교했을 때 상당한 특이점을 갖고 있다”라면서 “북한당국은 해외노동자들에게 일상적으로 가하던 가혹한 수탈과 인권 침해와는 어울리지 않게 대규모 저항에 대한 통제력을 크게 상실한 모습을 보였다. 집회와 시위는 꿈도 못 꾸게 하는 북한 기준에 중대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북한당국은 200여 명을 추려내 그중 절반, 즉 전체 파업 참여자의 5% 내외만을 송환하는 데 그쳤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탁 연구원은 “2000명이 넘는 노동자 전원을 송환할 경우 완벽한 입막음이 힘들 수 있다는 현실적인 고려도 작용했을 것이나 이번 파업이 북한 정권의 주민 통제력 상실이라는 큰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사례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은 최근 몇 년간 내부에서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한류와 주민들의 사상적 해이에 맞닥뜨리고 있다”라면서 “최근 남한과의 관계 단절을 선언하며 헌법 개정을 예고한 극단적인 행태는 주민들의 의식까지 완전히 통제하고 말겠다는 북한 정권의 집념을 드러내고 있으나 이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주민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 즉 기존의 통제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내부 균열이 커지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