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몰래 반려견 키우면 집에서 쫓겨날까?

2024-01-30 17:44

판례를 통해 살펴본 반려동물 이야기

반려견이 품에 안고 우는 여성 (참고 사진) / leungchopan-shutterstock.com
반려견이 품에 안고 우는 여성 (참고 사진) / leungchopan-shutterstock.com

2017년 어느 날, 집을 알아보던 중 경기도의 한 다가구 주택이 마음에 든 A씨.

그는 집주인과 전세 계약을 체결하며 계약금 4천만원을 곧바로 지급했다.

계약을 진행하면서 당시 A씨가 반려견 3마리를 키운다는 사실은 알리지 않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집주인은 계약을 무효로 하자며 계약금 반환을 시도했다.

이에 A씨는 집주인의 일방적인 계약 파기 통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집주인의 통지는 해약금에 의한 해제 의사표시이므로 계약금의 두 배(8천만원)를 물어줘야 한다는 취지였다.

집주인은 법원에서 A씨가 반려견 3마리를 기른다는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기에 A씨 잘못으로 계약을 해지한 것이므로 손해배상의 의무가 없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누구 손을 들어줬을까.

재판부는 세입자 A씨 손을 들어줬다. "반려견을 기르지 않는 것이 임대차 조건임을 (집주인이) 고지하지 않았고, 계약 당시 '집이 넓은데 2명만 거주하는가?' 등의 질문을 했지만, 그 질문에 '반려견과 함께 거주하는가?'라는 취지가 내포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따라 A씨가 집주인에게 반려견을 키운다는 사실을 고지할 의무가 없다고 판시했다.

다만, 집주인이 성향상 반려견을 좋아하지 않아 거절했다는 점, A씨에게 발생한 손해가 크지 않다는 점 등을 고려해 청구액 8천만원 가운데 5천200만원만 인정했다.

이장원 변호사가 쓴 '반려 변론'(공존)에 나온 판결 내용이다. 다양한 국내외 판결을 통해 반려동물과 관련한 여러 논란을 살펴본 책이다.

신간 '반려 변론' 표지 이미지 / 공존
신간 '반려 변론' 표지 이미지 / 공존

2022년 말 기준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이들은 600만여 가구, 1천300만명이 넘는다. 이들 중 상당수는 반려동물을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등골이 휘더라도 동물이 아프면 병원에 데려간다. 반려동물이 죽으면 가족 중 한 명이 사망한 것과 같은 커다란 슬픔과 상실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현실에선 이처럼 반려동물이 가족 구성원으로 대우받지만, 법적으로는 물건일 뿐이다. 법률과 판례에 따르면 동물은 여전히 물건으로 분류된다.

물건이기에 집에서 반려동물이 죽으면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려야 한다. 사체가 '생활폐기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경우, 주인이 동물장묘업체에 위탁해 화장할 수는 있다.

책에는 여러 사건과 판결이 담겼다. 막대한 유산을 개에게 남긴 어느 부호 이야기, 동물의 초상권이 인정되기 어려운 이유, 반려견 교통사고에 대한 보상금 문제, 캣맘의 행동이 문제가 되는 경우 등 다양한 내용을 소개한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은 어떤 주장을 납득시키거나 정답을 제시하는 데 있지 않다. 많은 사람이 동물 관련 현안들을 이해하고, 부당하거나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함께 목소리를 내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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