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자살을 어떻게 보도하면 좋을지에 대해 고민했다면 이제 더 생각해볼 것은 '이 보도가 정말 필요한가'라는 질문 같습니다."
배우 고(故) 이선균 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지 약 일주일만인 지난 4일, 나종호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사건 후) 이른 감이 들어 인터뷰를 계속 고민했다"면서 어렵사리 운을 띄웠다.
서울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던 나 교수는 대학과 군 생활 당시 주변 사람들의 자살을 겪으면서 정신의학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울대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하버드 보건대학원, 뉴욕대 정신과 레지던트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지금 이 순간 주변의 걱정되는 분들의 곁을 지켜주세요. 특히 기자분들께는 사람 생명을 살리는 보도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씨의 사망 사실이 알려진 지난달 27일 나 교수는 엑스(X·옛 트위터)에 이렇게 적었다.
이씨 죽음 후 자살 보도 권고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채 무수히 재생산되는 언론 보도를 보며 나 교수는 미국의 유명 요리사이자 방송인이던 앤서니 보데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2018년 6월 어느 날 응급실에서 직접 목격한 환자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보데인의 죽음을 모방해 자살을 기도한 사람들이 응급실에 실려 온 것이다.
나 교수는 "자살은 한가지 요인만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며 이선균 씨 죽음을 다룬 언론 보도로 인한 '베르테르 효과'(모방 자살)를 우려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하나의 원인으로 단순하게 만드는 순간 그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자신과 동일시하게 돼 자살의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것이 나 교수의 설명이다.
나 교수에 따르면 구체적 수단에 대해 묘사한 자살 보도는 같은 수단에 의한 자살 가능성을 40% 이상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사람을 살리는 보도'와 관련해 나 교수는 오스트리아의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예로 들었다.
오스트리아는 1978년 빈에 지하철이 개통된 후 지하철에서 자살하는 사람의 수가 급증하자 1987년 관련 사건에 대한 보도를 자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현지 언론이 가이드라인을 최대한 준수한 결과 1987년 하반기 빈의 지하철 자살자 수는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진 같은 해 상반기와 비교해 75%나 감소했다.
나 교수는 이를 언급하며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딴 '파파게노 효과'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는 자살을 묘사하는 언론 보도를 자제하고 보도 권고기준을 준수함으로써 자살을 예방하는 효과를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하다고 나 교수는 강조했다.
나 교수는 "자살 보도 권고기준을 준수하지 못하는 문제는 기자 개개인의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클릭 수를 유발할 수밖에 없는, 숨 가쁘게 돌아가는 언론 환경 구조의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권고기준을 준수하기 위한 언론과 전문가들의 사회적인 합의와 토론이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나 교수는 기자들이 처한 언론 환경을 이해한다면서도 기자들이 이번과 비슷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기사를 꼭 써야 할까' 고민해보기를 부탁했다.
이선균 씨와 같은 유명인의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불가피하더라도 빈도 수를 줄임과 동시에 자살 보도 권고기준을 엄수해야 하고, 그 외의 경우 더 나아가 자살 소식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 나 교수의 신념이다.
나 교수는 "잘못된 보도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이야기는 반대로 생각하면 보도 권고기준을 지킬 경우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는 것"이라며 "단순히 권고기준을 지키는 것을 넘어 '이 기사를 쓰지 않으면 (모방 자살을 막아) 사람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라고 한 번쯤은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극단적 선택이라는 용어는 자살을 외면하려는 자세가 반영된 신조어일지 모른다. 그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지 않는 이상,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지난해 초 tvN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나 교수가 자살을 '극단적 선택'으로 표현하는 것을 문제로 지적할 당시 함께 삽입된 나 교수의 에세이 속 문구다.
이에 대해 나 교수는 지금과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평상시에 '건강한 방법으로' 자살 예방 대화를 나누기 위한 온 사회와 시민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나 교수는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경험하면 회피하는 게 제일 흔한 방어기제"라며 "한국이 20여년 동안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점에 익숙해져 (모두가) 점점 무감각해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일본에서도 자살을 터부시하던 문화를 깨고 '말할 수 있는 죽음'으로, 또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책임이 있는 죽음'으로 규정하면서 국가 주도하에 10년간 자살률을 30% 이상 낮췄다"며 "우리도 국가적 차원에서의 자살 예방을 통해 '자살 공화국'의 오명을 벗을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나 교수는 '어떻게 하면 자살을 직면하고 이 문제를 줄여나갈 수 있느냐'는 물음에 미국 보훈병원에서 자주 사용한다는 문구를 언급했다.
"자살 예방에는 온 마을이 필요합니다."
즉, 자살을 예방하려면 언론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협력이 필요하고, 더 나아가 모든 국민의 역할이 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