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이 좋지 않은 A(43)씨는 4년 전인 2019년 4월 아버지와 함께 인천에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그는 "1주일 전부터 하루에 10차례 넘게 설사를 하고, 이틀 전부터는 호흡곤란 증상도 있다"고 토로했다.
2013년 폐렴으로 입원한 적이 있는 A씨는 "신장 치료를 위해 조만간 혈액투석도 시작한다"고 의료진에게 미리 귀띔했다.
당시 응급실에서 잰 A씨의 체온은 40도였다. 분당 호흡수도 38회로 정상 수치(12∼20회)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의료진은 A씨의 호흡수가 정상이 아닌 데다 의식마저 점차 잃어가자 마취 후 기관삽관을 했다. 인공 관을 코나 입으로 집어넣어 기도를 여는 처치법이었다.
곧바로 A씨에게 인공호흡기를 부착했으나 5분도 지나지 않아 심전도 기계의 그래프가 멈췄다. 심정지 상태였다.
병원 응급구조사가 급히 흉부 압박을 했고, 의료진도 A씨에게 수액을 투여한 뒤 심폐소생술을 했다.
다행히 A씨의 심장 박동은 살아났으나 '저산소성 뇌 손상'으로 반혼수 상태에 빠졌다. 응급실에 걸어서 들어간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은 때였다.
이후 그는 스스로 증상을 표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의사소통조차 불가능한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후견인인 A씨의 아버지는 2020년 5월 변호인을 선임한 뒤 총 13억 원을 배상하라며 대학병원 측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의 변호인은 소송 과정에서 "환자가 의식이 있는데도 의료진이 불필요한 기관삽관을 했다"며 "기관삽관을 제대로 했는지 확인하지 않는 등 경과 관찰 의무도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인천지법 민사14부(김지후 부장판사)는 A씨가 모 대학병원을 운영하는 학교법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고 19일 밝혔다.
재판부는 "A씨에게 위자료 등 명목으로 5억 7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학교법인 측에 명령했다.
법원은 대학병원 의료진이 기관삽관을 하는 과정에서 경과를 제대로 관찰하지 않았다는 A씨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당시 의료진은 신장 기능이 떨어진 A씨 상태를 고려해 일반 환자보다 더 각별하게 주의해 호흡수·맥박·산소포화도 등을 기록하며 신체 변화를 관찰했어야 했다"고 전제했다.
이어 "그런데도 의료진은 기관삽관을 하기로 결정한 후부터 심정지를 확인한 15분 동안 A씨의 상태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하거나 기록하지 않았다"며 "이런 과실과 A씨의 뇌 손상 사이에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당시 A씨의 호흡수가 증가하고 의식도 점차 떨어지는 상황에서 기관삽관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며 "병원 의료진이 A씨의 심정지 이후 뇌 손상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한 점 등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