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빨대는 플라스틱보다 1∼2만 원 더 비싸요. 안 그래도 물가가 올라 힘든데 규제 없는 상황에서 종이 빨대를 굳이 쓸 필요가 없죠."
1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근처 한 카페 매니저 A씨는 매장에 플라스틱 빨대를 구비한 데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A씨는 "플라스틱 빨대 규제가 있을 때는 종이 빨대를 썼지만, 규제 완화 후 더 이상 종이 빨대를 주문하지 않고 있다"며 "옥수수 전분 빨대같이 친환경 빨대는 종이 빨대보다도 더 비싸서 생각도 안 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일회용품 규제를 완화한 지 한 달여 지난 현재 대다수 카페에서는 종이 빨대가 '실종'된 모습이었다. 기자가 이날 서울 종로구 지하철 경복궁역, 광화문역 인근 카페 10여 곳을 방문한 결과 10곳 중 8곳가량이 플라스틱 빨대를 제공하고 있었다.
용산구 이태원동 근방 카페도 비슷했다. 10곳 중 약 8∼9곳이 플라스틱 빨대를 비치해 뒀다.
경복궁역 인근의 한 카페 매니저는 "손님들이 구부러뜨릴 수 있는 모양의 플라스틱 빨대를 더 선호하고, 시간이 지나면 '빨대가 흐물거린다'며 플라스틱 빨대를 요청한다"며 "종이 빨대를 제공할 때 '플라스틱 빨대는 없냐'며 불평하는 손님도 많았다"고 토로했다.
그나마 꾸준히 종이 빨대를 쓰는 곳은 스타벅스, 폴바셋, 투썸플레이스 등 대형 프랜차이즈였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2018년부터 매장 내 플라스틱 컵 사용을 금지하고 종이 빨대를 도입했다. 앞으로도 꾸준히 일회용품을 안 쓰는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것"이라며 "고객들 사이에서도 친환경 정책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 종이 빨대 비용은 감당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소규모 카페 등 자영업자들은 비용 절감 측면에서 일회용품 규제 완화를 반기는 모습이지만 시민들 사이에서는 자발적으로 '일회용품 규제'에 계속 동참하겠다는 반응도 상당수다.
종이 빨대의 경우 사용 시 거부감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플라스틱 컵, 종이컵 등은 매장 내 다회용기나 텀블러 사용 등으로 대체하는 문화가 꽤 정착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반응은 최근 들어 갈수록 급변하는 날씨 등 기후변화를 몸소 체감하며 환경정책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젊은 층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직장인 이모(29) 씨는 "대학생 때 쓰레기통에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산처럼 쌓여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뒤로부터 꾸준히 텀블러를 들고 다닌다"며 "불편함을 조금만 견디면 플라스틱 사용을 줄일 수 있는데, 일부의 편의를 위해 일회용품 규제를 완화한 정부의 정책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직장인 차모(29) 씨도 "고래 사체를 부검해 보니 플라스틱 컵 뚜껑이 그대로 나온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라며 "플라스틱 컵 사용이 해양 생물들을 해칠 것을 생각하면 죄책감이 느껴져 일회용품을 사용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23개월 된 아이를 키우는 이모(31) 씨는 "나날이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는 게 체감된다.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 최대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려고 한다"며 "아기 수저나 약병, 도시락 통도 전부 실리콘 용기 등 다회용기를 사용하고 물티슈 대신 손수건을 쓰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일회용품 정책이 자영업자의 경영난 가중 등을 이유로 후퇴했지만 궁극적으로는 다시 규제 강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장용철 충남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정부는 2018년 이후 일회용품 규제를 강화해 오다가 최근 경기침체 등을 이유로 규제를 완화해 정책의 신뢰성을 상실했다"며 "우리나라의 일회용품 규제는 유럽 주요 선진국 대비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기 때문에 향후 지속적인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도 "시민들의 자발적 노력만으로는 일회용품을 줄일 수 없다"며 "종국에는 테이크아웃 일회용 컵 사용을 금지하거나 다회용 용기로만 테이크아웃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규제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