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공부하던 우즈베키스탄 국적 유학생들이 영문도 모른 채 쫓겨났다.
학교 측은 불가피한 상황에 따른 조처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사실상 납치에 가까운 강제 출국 과정에 학생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경기도 오산시 한신대학교 국제교류원 부설 한국어학당에 다닌 우즈베키스탄 학생 22명이 학기가 채 끝나지 않은 지난달 27일 본국으로 강제 귀국 조처됐다는 사실이 12일 한겨레를 통해 전해졌다.
한겨레에 따르면 학생들은 비행기에 오른 출국 당일까지도 본인이 집으로 돌아가는 줄 감쪽같이 몰랐다. 학교 측이 거짓말로 이들을 속였기 때문이다.
학교 측은 당초 '외국인등록증 수령차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가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안내했고, 버스로 이들을 실어 날랐다. 버스엔 사설 경비업체 직원도 태웠다.
학생들은 당연히 이날 안내받은 대로 경기도 평택(수원출입국외국인청 평택출장소)에 가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학교 측이 마련한 버스는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고, 학생들은 버스 안에서 기막힌 소리를 듣게 됐다. 교직원이 "지금 출입국관리소에 가면 여러분은 감옥에 가야 한다", "한국에 다시 돌아오려면 지금 미리 출국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교직원들은 경비업체 직원을 시켜 학생들 휴대전화도 현장에서 압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맞닥뜨린 학생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고 한다. 이들은 공항에 도착한 뒤 학교 측이 미리 예매해 둔 티켓을 받아 들고 비행기에 탔고, 기숙사에 모든 짐을 남겨둔 채 그대로 한국 땅을 떠났다. 총 23명 중 건강 문제를 호소한 1명만이 국내에 남았다.
그렇다면 한신대 측은 왜 학생들을 속여가며 이런 황당한 일을 벌였을까.
한신대 어학당 관계자가 한겨레에 털어놓은 속사정은 이랬다. 지난달 6일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측에서 학생들의 잔고증명서를 요구했고, 이에 증명서를 떼봤더니 대다수 학생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법무부의 '외국인 유학생 사증발급 및 체류관리 지침'에 따르면 외국인 어학연수생은 학자금 등 유학 경비로 일정 금액을 지정된 통장에 정해진 기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이게 충족돼야 국내에 체류할 수 있다. 법무부가 증명서를 통해 잔고를 확인, 체류 가능 여부를 결정하는 건 유학생의 국내 불법 체류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쉽게 말해 통장에 돈이 있느냐 없느냐를 보고 불법 체류 가능성을 가늠하는 식이다. 물론 체류 기간은 비자 체류 기한에 따른다.
한신대 어학당 소속 우즈베키스탄 유학생 대부분은 3개월짜리 조건부 비자를 받은 상태로, 학기가 마무리되는 이달 20일 전후로 체류 기한이 만료된다. 국내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남아 있었다.
그럼 학생들은 예치금 잔고를 왜 유지하지 않았나. 강제 출국당한 유학생들 입장에선 여러모로 억울할 수밖에 없다. 태초에 학교로부터 잘못된 안내를 받았기 때문이다.
한신대 측은 현지에서 연수생을 모집할 때 한국 체류에 필요한 서류로, 본인 명의의 은행 잔고 증명서를 요구했다. 여기엔 1만 달러(USD 기준) 이상이 있어야 하고, 잔고 유지 기간은 '1일'이라고 했다. 학생들은 이 안내에 따라 잔고 유지 기간을 채운 뒤, 예치해 둔 돈을 중도에 인출해 개인 용도에 맞춰 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법무부 기준에 따르면 이 잔고 유지 기간은 '3개월'이었고, 한신대는 나중에야 이 사실을 통보받고 부랴부랴 학생들을 출국시킨 것으로 파악됐다.
한신대 측은 "대다수가 체류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고 이 사실을 통보하면 학생들이 도망쳐 불법체류자가 될 우려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법무부가 학생들 입국이 다가온 9월 11일에 갑자기 잔고 증명 유지 기준에 대한 말을 바꿨다. 이후 혹시 있을지 모를 불법 체류 발생을 막기 위한 협조 요청에는 단 한 번도 책임 있는 답변이 없었다"며 법무부 탓을 했다.
이를 두고 법무부 측은 한겨레에 "지난 5월 한신대 관계자들이 유학생 유치와 관련해 평택출장소를 방문했을 때 담당자가 재정 능력 심사 기준을 설명했고, 그 이후에도 여러 번 관련 규정을 설명했다"고 했다.
강제 출국 권한이 없는 학교가 유학생 의사와 무관하게 이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면서 상황은 심각하게 흘러가고 있다.
이 일에 대한 제보를 접수한 주한우즈베키스탄 대사관은 학교와 법무부 등을 상대로 진상 파악에 나섰다.
관할서인 오산경찰서도 학생들 신고를 받고 학교 측 관계자를 불러 조사 중이다.
한편 학교 측은 강제로 돌려보낸 유학생을 모두 제적 처리했다. 사유는 '출입국서류 미제출', '기숙사 무단이탈 사고', '학습 태도 불량', '품위 위반' 등이다.
학생들은 '본인 동의로 출국했다'는 서류에 서명하면 남은 등록금을 환불받을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