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류를 유통한 혐의로 한국인 2명이 베트남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이들 중 전직 국가정보원(국정원) 출신이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조선일보가 6일 단독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달 11일(현지 시각) 베트남 호찌민 가정소년법원에서 마약 밀매 등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한국인 중 1명은 김모(63·남)씨다.
김 씨는 국정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 1987년 1월 입직해 1999년 9월 면직한 인물로 알려졌다. 표면적으로는 사직서를 수리해 면직 처리한 것으로 기록이 남아 있으나, 근무 기간 밀수 사건에 관여했다가 들통난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일보가 확인한 결과 그는 1999년 국정원 부산지부 항만분실에서 보안 책임자인 항만기록 계장으로 일했다. 국제여객부두에서 보안책임을 담당했던 만큼, 김 씨는 자신의 직책을 이용해 밀수에 개입했다.
한 밀수 일당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페리호를 통해 일본제 골프채 500여 개가 담긴 종이상자를 부산항으로 몰래 들여오려 했고, 김 씨는 이들을 도와 밀수품을 외부로 반출하다 적발됐다. 이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골프채 1500여 개를 밀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법 위반 혐의를 받는 김 씨는 이 일로 2000년 징역 1년 6개월, 벌금 4억 6000만 원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그 뿐만아니라 2000년부터 2016년까지 출입국관리법 위반, 탈세 등 혐의로 여섯 차례나 복역한 것으로 전해졌다.
교도소를 들락거린 김 씨는 2019년 베트남으로 이주, 현지에서 건축용 석재를 한국으로 수출하는 회사를 운영했다. 그러다 현지에서 만난 중국인으로부터 '물건을 운반해 주면 1㎏당 500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고, 실제 작업에 나섰다고 한다. 이 중국인이 건넨 건 마약이었다.
김 씨는 2020년 7월 세 차례에 걸쳐 물건을 건네받았고, 본인이 수출하는 건축 자재 등에 이를 숨겨 인천항으로 밀반출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교도소 동료인 강모(30·남)씨를 끌어들였다. 강 씨도 이번 일로 베트남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김 씨의 범행은 베트남 공안이 항구로 들어온 운반 차량을 수색하던 중 발각됐다. 공안은 김 씨가 실어 보낸 물건에서 마약 39.5㎏을 발견했다.
베트남 현행법에 따르면 헤로인, 필로폰 등 마약류를 일정량 이상 소지하거나 운반한 사람은 사형에 처할 수 있다. 외국인이라고 해도 봐주지 않는다.
다만 김 씨는 "중국인 리모씨의 요구에 따라 물건을 운반했을 뿐 마약인 줄 몰랐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김 씨 사건을 수사한 베트남 수사관은 "김 씨와 그 애인이 운영한 수출 업체는 페이퍼 컴퍼니"라며 "김 씨가 수속 절차와 선적물 스캔 과정을 잘 알고 있었다. 검사기에 들어가도 걸리지 않는 법을 이용했다"고 했다.
이 일과 관련, 한 정부 관계자는 조선일보에 "(김 씨가) 국정원 부산지부에서 보안 담당자로 일하던 당시 밀반입에 활용한 방법을 (베트남에서) 범죄에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