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이 지하철에서 몰카를 촬영하거나 내연녀와 불륜 관계를 맺는 등 각종 범죄를 저지르고도 여전히 법조인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6일 서울신문에 따르면 2004년부터 약 20년간 40명의 판사가 ‘지하철 몰카’와 같은 성 비위는 물론 금품 수수, 음주운전 뺑소니 등을 저질러 징계를 받았지만 대부분이 여전히 법조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판사로 성폭력 사건 전담 합의부에서 근무하던 A씨는 2017년 7월 지하철 안에서 휴대전화로 여성 신체 부위를 3차례 몰래 촬영하다 체포됐지만 법원으로부터 고작 감봉 4개월이란 징계만 받았다. 이듬해 법원을 떠난 그는 2020년부터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로 재직 중이다.
창원지법 진주지원 판사였던 B씨는 내연녀와 불륜을 저지른 뒤 이를 의심한 아내를 폭행해 상해를 입혔다. 여기에 더해 재판부가 진행 중인 사건의 소송대리인인 변호사들과 11차례나 골프 모임을 가져 2019년 11월 정직 2개월 처분을 받았다. 그럼에도 B씨는 지난 3월까지 판사로 일하다 변호사 개업을 했다.
특히 법원이 판사의 음주운전에 대해 온정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서울남부지법 판사였던 C씨는 2019년 5월 면허 취소 수준에 이르는 혈중알코올농도 0.163%로 만취 운전을 하다가 발각됐다. 당시는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한 '윤창호법' 시행이 이미 시작된 시기였지만 C씨는 2019년 11월 감봉 2개월의 처분만 받고 끝났다. 이후 그는 2020년 법원을 떠나 대형 로펌 변호사로 전직했다. 이는 같은 해 3월 국토교통부의 한 국장이 음주운전으로 정직 1개월 처분을 받고 보직 해임된 사례와 상당히 대비됐다.
또 인천지법 부장판사였던 D씨는 2016년 11월 만취 상태로 운전하다가 차 2대를 치고 차량 탑승자 5명에게 상해를 입히자 달아났다. 인명 피해를 내는 음주운전 뺑소니의 경우 일반 공무원은 최소 정직 처분을 받는다. 하지만 법원은 그에게 단지 감봉 4개월의 처분만 내렸다.
김영란법을 위반하고도 여전히 법복을 입고 버젓이 판사로 일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대전지법 부장판사 E씨는 2017년 7월부터 9월까지 지인에게 1000만 원을 받고 형사고소 사건에 관한 법률 조언을 했다. 이에 그는 2021년 10월 정직 6개월 및 징계부가금 1000만 원 처분을 받았다. 그는 금품 수수에 따른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지만 여전히 법원에서 일하고 있다.
판사가 받는 징계가 검사나 일반 공무원에 비해 가벼운 이유는 법관징계법상 판사의 징계가 정직, 감봉, 견책 3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법관의 신분보장을 위해 개인 비위에 약한 처벌을 내리는 관행은 근절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위 법관이 자신이 관련됐던 사건을 맡는다는 것은 재판의 공정성을 해치는 일"이라며 "온정주의가 흐르는 법관징계위원회 과반을 외부 출신으로 구성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법원이 비위 법관들에게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사표 낼 기회를 사전에 주는 것이 문제"라며 "법원도 이제 판사 재임용 심사에서 과감하게 탈락시킬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