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로 출산을 한 레즈비언 부부가 일상을 공개했다.
지난달 30일 중앙일보는 김규진(32)·김세연(35) 씨 근황을 보도했다. 김규진 씨는 지난 8월 30일 딸 라니를 출산했다. 벨기에 정자 은행에서 기증받아 품에 안은 아이다. 두 사람은 언론에 얼굴을 드러내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 어땠냐고 묻자 김규진 씨는 "저희 둘 다 감성적인 사람들은 아니어서요. 눈물 뚝뚝 흘리기보다는 '드디어 성공했다' 이런 느낌이었어요. 아내가 마취과 의사이긴 하지만 분만실에 들어온 건 처음이었는데, 옆에서 '아파야 자궁 문이 열리니까 아직 마취하면 안 돼'라고 오히려 차분하게 설명해주더라고요"라고 회상했다.
김세연 씨는 "(규진이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러다 아기가 ‘응애’하고 나왔는데 ‘와 어떻게 나왔지?’ 싶었고요"라고 말했다.
김규진 씨는 한동안 연이 끊겼던 어머니와 아이가 태어난 후 가까워졌다고 고백했다. 어머니는 "1일 1사진 필수로 보내라"는 말도 한다. 육아를 도와주고 선물도 주고 싶어하신단다.
그는 "서서히 멀어졌던 지인들한테도, 회사에서 직접 알지 못했던 분들한테도 응원 메시지가 왔어요. 심지어 아파트 단지에서 산책 나온 강아지를 귀여워 해줬는데 나중에 견주분이 SNS로 '기사에서 봤다. 정말 축하드린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김세연 씨는 "임신·출산 이야기를 꺼내기 전엔 제가 커밍아웃을 해도, 편견을 갖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 넘겨짚었어요. 특히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받아들이지 못하실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아이를 낳은 병원·조리원에서 마주친 50~60대 직원분들의 생각보다 열린 마음과 호의적인 반응에 놀랐어요"라고 했다.
이들이 임신을 처음 고민하게 된 건 프랑스에서 만난 김규진 씨의 직장 상사가 어느날 던진 ‘애는 낳을 거지?’라는 질문에서부터였다.
지난 한 달간 모모(母母) 가정으로서 겪은 제도적 벽이 있었냐는 질문에 그는 "출생신고를 할 때요. 안 될 걸 알면서도 일단은 ‘부(父)’에 ‘김세연’ 석 자를 써냈어요. 나중을 위해서라도 접수했다는 기록을 남기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예상대로 불수리 됐고 사유서에는 ‘모(母)는 출산한 사람이 모이기 때문에 김규진만 모가 될 수 있고 부(父)는 (김세연과 같이) 여성일 수 없으므로 불수리한다’고 쓰여 있었어요. 결국 양육자가 두 명임에도 한 부모 가정이 됐죠. 한 가지 개선된 부분이 있다면, 4년 전 혼인신고를 할 땐 접수 가능 여부를 따지는 데에만 4시간을 기다렸음에도 결국 못했는데 이번엔 접수 자체는 가능해졌어요"라고 말했다.
김세연 씨는 "배우자로 인정이 안 되다 보니 당장 직장에서도 출산·육아 휴가를 받을 수 없어요. 저희가 같은 공동체 안에서 한 아이를 기르고 있는데 그게 법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니까 자꾸만 ‘아이의 보호자는 한 명’이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출산 후 정말 많은 분이 저희 가족을 축복해주셔서 희망에 부풀다가도 법적인 문제 앞에선 다시 현실로 돌아와요"라고 했다.
두 사람은 아이를 한국에서 키울 예정이다. 김규진 씨는 "아내는 사실 엄마가 둘인 것보다도 ‘엄마가 너무 나이 든 것 아냐’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걱정해요. 댓글을 보면 ‘생각 없이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나중에 받을 상처는 생각 안 하냐’ 이런 글들이 많은데 임신부터 출산까지 매 순간이 생각의 과정이었어요. 라니에게 우리 사회엔 다양한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요. 아빠와만 사는 친구, 할머니와만 사는 친구, 외국인 부모님과 사는 친구도 있다. 그 중에서 우리 집은 엄마가 두 명 있는 집이고 둘 다 너를 너무나도 사랑한다고 말해줄 거에요"라고 말했다.
김세연 씨는 사랑에 대해 "사랑이든 이와 비슷한 어떤 긍정적인 감정이 됐든 그런 게 바탕이 되면 상대방을 포용하게 돼요. 이 복잡한 세상 모두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어요. 사랑은 100%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해도 그 자체로 받아들여 줄 수 있는 ‘동력’이 된다고 생각해요"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