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한 카페가 철거될 상황에 놓였다. 세계건축상을 수상한 부산의 유명 카페를 따라 지었다가 저작권 침해 소송에 걸린 것이다. 카페는 문을 연 지 4년 만에 결국 최후를 맞게 됐다.
서울서부지방법원 민사 11부(재판장 박태일)가 부산 기장군에 있는 카페 '웨이브온'을 모방해 지은 울산의 한 카페 측에 철거 명령을 내렸다고 19일 중앙일보가 단독 보도했다.
2016년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들어선 웨이브온은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비틀어 쌓은 형태의 외관으로 여러 사람의 주목을 받은 카페다.
지상 3층 규모의 대형카페는 콘크리트와 유리가 적절히 조화된 인테리어로 꾸며져 예술 공간 같은 느낌을 자랑했고,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7년엔 세계건축상(WA), 2018년엔 한국건축문화대상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소셜미디어(SNS) 등 온라인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그 모습에 반해 부산지역 사람들은 물론이고 멀리서 발걸음하는 사람들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입소문이 멀리까지 난 탓일까. 2019년 7월 사람들의 눈을 의심케 하는 일이 벌어졌다. 울산 북구의 한 바닷가에 웨이브온과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유사한 외관의 카페 하나가 생겼다. 주변이 모두 바다라는 입지는 물론이고 내부와 외형까지 똑 닮은 모습이었다. 이 탓에 누군가는 이곳을 '웨이브온 2호점'으로 오해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 카페의 등장에 가장 황당했던 사람은 웨이브온을 건축한 이뎀건축사무소의 곽희수 소장이다. 다른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두 건물은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결국 곽 소장은 그해 12월, 저작권 침해,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을 이유로 울산 카페를 지은 건축사사무소와 건축주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건축물 철거도 요구했다.
소송은 꽤 오래 진행됐다. 지금껏 건축에 대한 저작권 소송은 드물었던 탓에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여럿의 이목이 쏠렸으나, 재판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약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그간 울산 카페는 지역 내 명소로 자리잡았다.
재판부는 울산 카페의 △내부 계단을 따라 형성된 콘크리트 경사벽 △경사벽·돌출공간을 떠받치는 형태의 유리벽 △기울어진 'ㄷ'자형 발코니벽 △상부 건물 전면 중앙통창 등이 웨이브온과 유사하다고 판단했다. 웨이브온의 건축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본 것이다.
소송 과정에서 울산 카페 측은 '웨이브온 건물의 창작성을 인정할 수 있는 부분만 분리해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웨이브온을 무단으로 복제한 건물이 이뎀건축사의 전시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실질적 유사성이 있는 부분만 따로 떼어 폐기하는 건 불가능하다. 전면 철거하라"고 명령했다. 웨이브온 측에 5000만 원을 배상하라고도 했다.
국내 건축 저작권 관련 소송에서 건축물 철거 명령이 내려진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2020년 강원도 강릉의 유명 카페인 테라로사 건물을 모방해 비슷한 카페를 경남 사천에 지은 건축주에게 법원은 건축물 표절에 대한 500만 원 배상 판결을 했을 뿐, 철거 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이와 관련 웨이브온을 건축한 곽 소장은 "음악이나 영상물 등 다른 창작물은 저작권법상 무단 복제 시 폐기가 원칙인데 건축물은 그렇지 못했다. 건축에 대한 저작권에 대한 인정이 거의 없었는데 이번 판결로 건축계 전체적으로 환영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막대한 투자가 이뤄진 건물이라 해도 '표절했다간 철거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했다.
일명 '짝퉁 웨이브온 사건'으로 불린 이 분쟁의 결말을 접한 네티즌은 "아이고야...", "으이구 꼴 좋다", "양심 어디 갔나요"라는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