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부산인지 오사카인지 모르겠네요."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부산 최대 상권 중 하나인 부산 서면. 이곳에서도 최근 가장 '핫플'로 꼽히는 젊은이들의 거리인 '전포 사잇길'.
알록달록한 색깔, 큼직한 일본어, 사진과 포스터를 활용한 디자인 등 일본 간판 스타일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술집과 밥집이 즐비했다.
이곳에서 만난 최모(32)씨는 "가게마다 각각의 콘셉트나 매력이 있는 건 좋지만, 일본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일본풍 가게가 과도하게 자주 보일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지고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까운 부산은 과거부터도 일본의 음식과 문화를 자주 접할 수 있는 곳이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일본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술집과 음식점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어느새 일부 지역에서는 한국 음식점보다 일본 음식점을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전포사잇길'에서 가장 유동 인구가 많은 직선 약 100m 구간에는 간판에서 한국어를 찾기 힘든 일본풍 가게가 7개가 모여있었다. 술집 2곳 중 한 곳은 일본풍 가게였다.
'전포사잇길'과 함께 MZ가 선호하는 상권 중 하나인 광안리(광안동·민락동) 상황도 마찬가지.
이들 가게의 특징은 일본 음식만 파는 것이 아니다.
간판에서 한국어를 완전히 지우고 인테리어는 일본 현지 느낌을 최대한 살린다는 것이 특징이다.
심지어 일본 가게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대나무 조경부터 일본 광고 포스터로 벽면을 도배하는 점포들이 늘어나고 있다.
부산에서 일본풍 야키니쿠(한국식 고기구이 문화를 일본화한 음식) 가게를 운영하는 강모(35)씨는 "몇 년 전 노노재팬 때는 야키니쿠라는 단어를 쓰면 매출이 감소해 매장 이름을 바꿨는데 최근 다시 일본풍으로 인테리어와 가게명을 바꿨다"고 말했다.
문제는 부산 최대 번화가이자 유행을 선도하는 MZ가 가장 많이 찾는 서면과 광안리 상권에 일본풍 가게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부산 고유의 문화가 점차 희미해져 간다는 것이다.
일본풍 가게를 적극적으로 찾는 젊은 층 의견은 다소 엇갈렸다.
김모(24)씨는 "외국에 가지 않아도 일본의 문화와 음식을 쉽게 즐길 수 있어서 좋다"며 "문화를 동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유행 수준인데 이것을 억지로 문제 삼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에 우모(28)씨는 "과거 역사적 관계를 돌이켜봐도 하필 일본 문화에 이 정도로 열광해야 하나 싶다"며 "특히 부산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부산을 대표하는 상권인 서면이나 광안리를 찾아 마치 일본을 온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문화를 즐기는 것까지는 좋지만 단순히 유행으로 소비되는 것을 우려했다.
강태웅 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는 "일본과 사이가 좋아져 그 문화를 즐기는 것은 좋지만 오직 이를 소비 대상으로만 여기는 점은 아쉽다"며 "아직 우리나라 라디오에서는 일본 가요가 방송되지 못할 만큼 대중문화적으로도 개방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고 외교적 문제도 수십 년 동안 그대로인 상황에서 일본풍 식당, 술집들이 즐비한 것은 이질감으로 다가온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장 일본 문화를 막자는 것이 아니라, 일본과의 관계나 그 나라에 관한 공부와 이해가 어느 정도 이뤄지면서 문화를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아무리 한일관계가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고 하더라도 아직 일본 문화에 불편함을 느끼는 소비자도 많다"면서 "일본 문화가 한국에 들어오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부)소비자 입장에서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과잉된 측면이 있고, 업주 입장에서도 이런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