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경기도 성남시의 한 대형 백화점에서 '무차별 칼부림'이 발생한 가운데 현직 경찰이 묻지마 범죄가 벌어지면 '국민은 경찰의 도움을 구하지 말고 알아서 각자도생하라'는 글을 올려 논란이다. 얼핏 신랄한 조롱성 글에 대해 온라인에서는 '공무원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과 함께 '열악한 현장 진압의 고충이 이해된다'는 공감의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4일 직장인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칼부림 사건? 국민은 각자도생해라'는 글이 올라와 에펨코리아 등 다른 커뮤니티에 전파됐다.
경찰청 직원임을 인증한 A씨는 "칼부림 사건으로 피해 보신 분과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 먼저 드린다"고 전제하면서 "앞으로 묻지마 범죄 등 엽기적인 범죄가 늘어날 것 같은데 경찰은 이대로는 방법이 없다"고 단언했다. 고로 "국민은 알아서 각자도생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호우, 폭염 등 이 세상 모든 문제와 민원은 각 정부 부처의 모르쇠 덕분에 경찰이 무한 책임을 진다"며 "거기에다 범죄자 인권 지키려 경찰들 죽어 나간다. 공무원 중 자살률 1위인 경찰은 더 이상 못 버티겠다"며 토로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과잉 진압을 이유로 소송에 휘말렸다가 '현실과 동떨어진' 판결을 받은 사례를 조목조목 열거하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A씨는 "낫 들고 덤비는 사람한테 총 쏴서 형사 사건은 무죄가 났는데도 민사소송에서 1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났다"며 "또 칼로 피해자를 찌르고 도망간 사람에게 총을 쐈는데 형사는 무죄가 나왔지만, 민사로 7800만원을 배상한 사건도 있다. 몸싸움하는 동시에 움직이고 있는 대상을 정확하게 허벅지를 쏘지 않으면 잘못이라는 이유에서다"고 적시했다.
또한 "칼 들고 있는 흉기 난동범에게 테이저건을 쐈는데 범인 스스로 넘어져서 자기가 들고 있는 칼에 찔렸다. 그런데 '경찰관이 범죄자가 자빠지는 방향까지 예상했어야 한다'며 수억원을 배상하라는 2011년도 레전드 판례도 있다"고 꼬집었다.
사법부와 국가인권위원회를 향한 A씨의 작심 발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여성 운전자가 교통 단속하는 경찰을 폭행해 체포됐는데 체포 과정에서 반항을 심하게 하다가 자기 혼자 넘어져 골절된 사건이 있었다. 이 여성이 고연봉 학원강사라 4억4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며 "나는 이 판결 이후로 내 차로 블랙박스 신고는 할지언정 경찰관 제목 입고 교통 단속 절대 안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신호 위반해 도주하던 오토바이가 혼자 자빠져서 운전자가 가로수를 들이받고 사망했는데 경찰이 무리하게 쫓아가 사고가 났다며 업무상 과실치사로 벌금 2000만원의 판결이 나왔다"며 "벌금만 2000이고 사망자의 나이가 어려서 민사는 따로 수억원을 물어줬을 거다"고 지적했다.
또 "가게에서 난동 부리는 취객을 지구대로 데려왔는데 갑자기 달려들길래 경찰이 방어하려고 밀었더니 뒤로 넘어지면서 전치 5주에 독직폭행으로 고소당해 합의금과 치료비 5300만원을 물어준 예도 있다"며 "합의했는데도 징역 6개월 선고유예 판결이 났다. 주먹이나 팔을 잡을 수 있는데 밀쳤다는 게 판결 이유였다"고 분노했다.
그 외에도 A씨는 경찰이 칼 들고 난동 부리는 사람에게 테이저건을 쏜 뒤 뒷수갑을 채우고 구급대원이 발을 묶었는데 용의자가 9분 뒤 의식을 잃고 5개월 뒤 사망하자 3억2000만원의 배상 판결이 난 사례를 소개했다.
테이저건 맞고도 저항하는 사람에게 뒷수갑 채운 건 물리력 사용 범위를 넘어섰다는 게 판결 이유라고 했다.
그는 "그럼 칼 들고 난동 부리는 X한테 수갑도 채우지 말고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제발 같이 가달라고 무릎 꿇고 빌어야 하나"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A씨는 "우리나라에서 흉기 난동 범인에게 총 뽑아서 경고하는 것은 그 경찰관이 자기가 부양할 가족들에게 총 뽑아서 경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며 "총알 한 발당 1억 배상할 거 생각해야 하는 나라에서 총은 무슨 총이냐"고 따졌다.
이어 "경찰 지휘부는 매번 총기 사용 메뉴얼이니 적극적으로 총 쏴라 이빨만 털지 소송 들어오면 나 몰라라 하는 거 우리가 한두 번 보나"며 "범죄자 상대하면서 소송당하고 심지어 무죄 받고도 민사 수천 수억씩 물어주는 게 정상적인 나라냐"고 물었다.
또 "얼마 전 의정부 법원 판사는 판결 직후 피의자가 자기한테 욕 한마디 하니까 반성의 기미가 없다며 징역 1년 선고했던 걸 번복해서 3년으로 늘리던데 왜 경찰들은 개 처맞듯이 두들겨 맞아도 꼴랑 벌금 50만원, 100만원이냐"며 "이게 나라냐? 이게 법치국가냐?"고 날을 세웠다.
A씨는 "경찰이 이렇게 3급 국민 대우받으면서 일하는데도 여전히 범죄자를 천룡인 취급하는 말도 안 되는 판례들이 매년 수십 개씩 쌓여간다. 판사들과 인권위 X들이 손발 다 잘라버린 게 경찰 조직의 현실이다"며 "사명감으로 시작한 신입 경찰이 3년이면 무사안일주의 K-캅스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고 자조했다.
경찰의 적극적인 법 집행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2월부터 개정 경찰관 직무집행법이 시행됐다. 현장 경찰관은 긴박한 상황에서 직무 수행 중 타인에게 피해를 줘도 고의·중과실이 없고 수행이 불가피했다면 정상을 참작해 형사책임을 감경 혹은 면제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일선 경찰들 사이에선 여전히 해당 법률이 무용지물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규정대로 대처해도 사후 민사 소송이나 인권위 조사 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