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가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두고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 여럿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해당 교수는 사망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모두가 교사의 극단 선택 이유를 '학부모 갑질' 때문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공학 교수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이 교수는 "극단 선택과 교권 훼손이 정말 인과관계가 있는 일이고, 교사가 극단 선택을 한 문제의 원인이 교권 붕괴 때문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만약 교사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무도한 태도가 (사망의) 원인이고, 이것이 사회적 문제라면 교사들의 극단 선택(비율)이 다른 직종보다 높다는 증거가 필요하다"며 "교사가 더 극단 선택을 많이 하는 위험 직종이라면 이 호들갑이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직종의 사람이 극단 선택을 한다"며 "직종과 상관없이 사람들은 어떤 심리 상태에 이르면 극단 선택이라는 지극히 예외적인 선택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례(서이초 교사 사망)가 그런 사례와 다른 경우라는 증거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이 교수는 "내가 한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에 우려하는 이유는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사안일 수도 있는데 사회적 폭력의 피해자로 단정하기 때문"이라며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성급한 것이고, '군사부일체'라는 봉건적 권위주의 가치관을 교권이라는 말로 회복하려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극단 선택이 외부 요인 때문이라면 이건 타살로 봐야 한다. 이런 인과관계를 무시한 피해자 단정은 만약 그것이 원인이 아니라면 근거도 없이 어느 학생과 그 학부모를 살인자 또는 타인을 극단 선택을 하게 만든 무서운 사람으로 모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또 "만약 그 학생, 학부모와의 갈등이 평상의 범주 안에 있었다면, 교사에게 항의했을 학생과 학부모가 억울하게 정신적 트라우마와 죄의식을 갖고 살게 하는 가해를 우리가 하는 지도 모른다"고 염려했다.
그는 "교사가 전문직인 것은 해당 교과 과목의 지식의 전문가라는 뜻만은 아니다"라며 "교육자는 피교육자의 심리와 행동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교육은 교과과정 뿐만 아니라 교실에 대한 장악과 피교육자의 심리와 행동에 대한 이해와 지도 능력이 포함되어 있다고 우리는 가정해야 한다. 그 직무 범위는 때로는 감정 조절에 실패하는 학부모를 상대하는 일도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런 이해와 준비가 없이 교사가 되었고, 모든 학생과 학부모가 늘 감사하고 천사처럼 구는 직업으로 알고, 자신이 갈등을 감내하는 힘이 얼마인지 모르고 교사를 선택했다면 그것은 직업을 잘못 선택한 불행한 한 젊은이의 좌절일 수도 있다. 즉 교육도 사람을 다루는 감정 노동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선생님은 모두 존경받는다는 환상 속에 마음이 여린 분이 직업을 잘못 택한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나는 단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불행한 죽음을 인과관계 검증 없이 마치 '사회적 문제'라고 단정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사망한) 교사는 특정 학생이나 학부모의 문제로 죽는다는 억울함을 호소한 유언을 남긴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런 위험한 단정들을 하냐"고 말했다.
이어 "산 사람들에게 죽음은 애처롭고 슬프다. 그렇다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모두 지켜줄 수 있는 것처럼 환상에 빠지는 일이 올바른 일은 아니다. 그리고 인과관계도 없는 원인을 지목하고 단죄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앞서 이 교수는 지난달 29일에도 "한국의 한 교사의 극단 선택으로 '교권'이 도마 위에 올라있다. 무력해지는 교단의 모습의 문제가 봇물 터지듯 분출하고 있고 벌써 정치권은 또 입법의 움직임 마저 있다. 한국에서는 한 해에 1만 4000여 명이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결정한다. 우리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타인의 죽음을 정치적 아젠다에 활용하는 일에 너무 익숙하다. 나는 한 교사의 자진을 통해 우리 사회가 또 급하게 사회적 아젠다에 매몰되는 것을 우려한다"는 내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교육자로서 '교권'이라는 단어에 회의적이다. 교육자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조금 직설적으로 말하면 다른 서비스업 종사자들처럼 감정 노동자들이다. 서비스업은 사람을 상대로 한다. 진상 고객도 있고 감사하는 천사 같은 고객도 있다. 교사의 서비스에 대해 고객들은 부족한 경우 고객들은 불만을 제기할 권리가 있다. 교사의 고객은 학생과 학부모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교육자라고 다 성실하거나 교육적이지 않다. 교육 소비자도 교육 서비스 제공자의 부당함에 항의할 권리를 제한할 수 없다", "(어느 직종이나 마찬가지로) 소비자는 기대와 어긋난 서비스에 항의하고 피해를 구제받을 권리가 있어야 하고 서비스 제공자도 부당하고 폭력적이고 제도를 악용하는 고객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기본권이지 특수한 직업군에게 특별한 권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교육자라는 이유로 특별한 권리를 선언할 이유는 없다. 그런 규제와 보호는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이해 집단을 과보호한다"고 부연했다.
또 "교사들이 교육자로서 권위를 잃었다면 그것은 공부를 학교가 아닌 학원에서 하는 공교육의 붕괴가 근본 원인이지 학생과 학부모가 더 사악해져서도, 학생 인권 조례 때문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교수가 남긴 글에는 이견을 가진 이들과 그의 얘기에 공감하는 네티즌의 답글이 다수 달렸다.
일부는 해당 글을 문제 삼고, 이 교수가 재직 중인 카이스트 측에 항의한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1일 추가 글을 올려 "의견이 다르면 저와 토론하면 된다. 학교를 통해 항의하는 분들이 있다는데 자신과 다른 의견을 용납 못 하겠다는 선생님들의 그런 태도야말로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비민주적으로 비친다는 걸 알기 바란다"고 했다.
한편 앞서 지난달 18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내에서 지난해 3월 신규 임용된 23세 교사 A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울경찰청은 해당 교사가 사망 전 학부모 민원에 시달렸다는 동료 교사 증언 등을 토대로 현재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사망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 강남서초교육지원청 등도 합동조사단을 꾸려 사태 파악에 나섰다.
이 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국교사모임)은 교육 현장의 교권 침해 실태를 고발, 교육권 보장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22일과 29일 A 씨를 추모하는 도심 대규모 집회를 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