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한쪽 눈을 실명한 남성이 37년 만에 국가로부터 3억80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받게 됐다.
20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부산지법 동부지원 신헌기 판사는 최근 A(59)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 같이 판결했다.
A씨는 대학생이던 1986년 11월,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 등을 목적으로 부산의 한 대학교에서 열린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다.
당시 경찰은 500여 명의 인력을 동원해 시위 진압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A씨는 최루탄 파편에 맞아 왼쪽 눈이 실명되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 직후 A씨는 보상을 받기 위한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부산시 경찰국(현 부산지방경찰청)은 "최루탄에 의해 다친 점은 인정하지만, 배상 문제는 경찰관의 소관이 아니므로 내사 종결하였음을 알려드린다"고 통보했다.
A씨는 직선제로 대통령이 바뀐 1988년에도 민원을 제기했으나 "이미 종결된 사건으로 추가 조사할 것은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A씨는 왼쪽 눈이 실명된 채로 지금까지 20여 곳의 직장을 옮겨 다니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왔다. 취업하자마자 해고당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A씨의 아버지는 사고가 일어난 지 34년이 지난 202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에 진실 규명 신청서를 냈고, 진화위는 '국가가 A씨에게 사과하고, 배상 등 화해를 이루는 조치를 해야 한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A씨는 진화위의 결정을 토대로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찾아 손해배상청구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다.
공단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가 안전을 확보하지 않은 채 시위를 진압해 A씨의 실명을 초래했다고 주장하며 국가를 상대로 2억 5000만원의 배상액을 청구했다.
이에 정부는 민법상 손해배상 채권의 소멸시효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 및 국가재정법상 5년이 모두 지났다고 주장했다.
또 국가배상책임 요건인 법령 위반과 관련해 시위대에 향한 최루탄 발사 행위는 법규에 따른 정당한 직무수행이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정부의 주장에도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정부가 A씨에게 1억 4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특히 배상액 중 1억 3000만원에 대해서는 사건 발생일인 1986년 11월부터 연 5%의 이자를 적용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A씨에 지급해야 할 전체 배상액은 3억 8000만원으로 늘어났다.
법원은 진화위법에 규정된 사건 가운데 중대한 인권침해, 조작 의혹 사건 등에 대해서는 민법 및 국가재정법상 소멸시효가 적용돼서는 안 된다는 헌법재판소의 과거 결정을 인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