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대 안 나오고 국내에서 의사 될 수 있는 길 있었네

2023-05-30 13:52

시험 쉬워 입학 문턱 낮고
한국서 의사면허 취득 가능

헝가리 국립대 제멜바이스(Semmelweis). / 이하 제멜바이스 홈페이지 캡처
헝가리 국립대 제멜바이스(Semmelweis). / 이하 제멜바이스 홈페이지 캡처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 의료 붕괴 등 현 의료계 난맥상의 근본 원인이 절대적인 의사 수 부족으로 지목되면서 의대 정원 확대 논의에 불이 붙었다. 이와 맞물려 의사 배출의 또 다른 통로로 현행법상 허용된 해외 의대 졸업 한국 유학생들의 국내 의사면허 취득 문제도 다시 쟁점화되는 모양새다.

조선비즈에 따르면 한국에서 의사가 되려는 학생들의 헝가리 의대행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인 학생이 가장 많이 진학하는 것으로 알려진 제멜바이스(Semmelweis) 의대의 경우 2020년 기준 재학생 1317명 중 약 20%(253명)가 한국인이다.

실습 중인 제멜바이스 의대생들.
실습 중인 제멜바이스 의대생들.

또 다른 헝가리 의대인 세게드(Szeged) 의대 올해 재학생 916명 중 한국인 학생은 134명이다. 페치(Pecs) 의대에 재학 중인 한국인 학생도 94명에 달한다.

학생들이 헝가리 의대에 지원하는 것은 국내 의대보다 들어가기가 쉽기 때문이다. 한국 대학은 대학수학능력시험, 논술시험, 학교생활기록부 등을 복합적으로 보지만 헝가리 의대는 절대평가로 학생을 선발한다.

비교적 입학 경쟁이 덜한 해외 의대로 눈을 돌린 유학생들은 졸업 뒤 한국 의사 자격을 따는 걸 목표로 한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인 헝가리에서 의대를 나오면 EU 국가는 물론 미국 의사 면허를 딸 수 있지만, 해당 나라에서 영주권, 시민권이 없으면 개업이 불가하기에 사실상 선택지는 국내 유턴밖에 없는 것이다.

헝가리 의대 4곳은 2014년 이후 순차적으로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의료국가시험원(국시원) 인증심사에 통과했다. 국내 의사 국가시험 관리기관인 국시원 인증을 받았다는 것은 이 의대를 졸업한 학생이 국내에서 의사 국가고시를 볼 수 있고, 합격할 경우 의사 면허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2015년부터 2021년까지 국내 의사 국가고시에 도전한 헝가리 의대 출신은 총 77명인데, 이 중 81%인 62명이 합격했다. 같은 기간 헝가리를 제외한 외국 의대 출신이 국가고시에 합격한 비율도 68%나 됐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조사 범위를 2003년부터 2020년까지 17년간으로 넓히면 국내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외국 대학 졸업자는 365명이며, 미국(97명), 필리핀(68명), 헝가리(49명), 독일(33명), 영국(22명) 순이다. 우즈베키스탄(12명), 우크라이나(2명)도 있었다.

그 때문에 의료계에서는 '국내 의사 면허 편법 취득'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2030 의사와 의대생들로 구성된 '공정한사회를바라는의사들의모임(공의모)'은 헝가리 4개 의대를 대상으로 한 복지부의 인정은 무효라며 복지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내기도 했다.

이후 소강상태에 접어드는가 했던 이 이슈가 최근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의대 정원 확대를 본격 논의하는 시점에서 재점화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국내 의대 정원은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당시, 의협과 협상으로 단계적으로 줄어 2006년부터 올해까지 3058명으로 17년째 유지되고 있다. 2020년 문재인 정부는 '2022학년도부터 10년에 걸쳐 의대 정원을 총 4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했다가 의협의 거센 반발에 물러섰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활동가들이 공공의대 신설 및 의대정원 확충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뉴스1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활동가들이 공공의대 신설 및 의대정원 확충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뉴스1

의협은 이번에도 의대 정원 확대에 원칙적으로 반대하고 있지만, 고령화로 의료 수요가 급증하는 데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 사실상 의협 등의 손을 들어준 마당에 ‘더 이상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게 내부 분위기다. 의협은 의약분업 이후 줄어든 351명을 증원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의대 증원과 해외 의대 졸업자 국내 유입에 모두 부정적인 의료계가 양면전을 펼치기는 버거운 만큼 양보할 건 해주고 받을 건 받는 실용주의적 노선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의대 증원 규모는 소폭 늘리는 쪽으로 타협하면서, 해외 의대 졸업생들의 국내 의사 면허 취득을 원점 재검토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투트랙 전략이다. 명분과 실리를 전부 챙기는 카드인 셈이다.

다만 아직까지 의협 차원에서의 움직임은 없는 상황이다.

의협 관계자는 위키트리에 "공의모 입장이 우리와는 무관하다"며 "한국 유학생들이 해외 의대에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을 국내 의대 증원과 엮어 논의하는 것은 기존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고 말했다.

home 안준영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