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하지 않는 이들도 다 알았다. '설강화'가 문제작이 될 것이라는 걸.
최근 방송되고 있는 JTBC 토일 드라마 '설강화'가 지난 18일 첫 방송된 이후 식지 않는 관심을 받고 있다. 이 관심이 긍정적이지 않다는 점은 애석하지만.
'설강화'가 문제가 된 이유는 크게 '역사 왜곡'이다. '설강화'는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87년을 배경으로 운동권 학생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남파 공작원 임수호(정해인 분)라는 인물을 극의 전면에 배치하고, 간첩을 잡는 일에만 몰두하는 '성찰하는 안기부 직원' 이강무(장승조 분)를 서브 남주로 설정해 민주화 운동을 폄훼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JTBC는 제작 발표회에 주인공 정해인, 지수만 참석시킴으로써 장승조, 정유진, 허준호 같은 안기부 직원들이 관심을 덜 받게 했고, 시청자들의 우려에 대해서는 방송을 보고 평가해 달라는 말로 일관했다. 방송이 이미 1, 2회가 나간 상황에서도 시청자들의 비판에 방송을 끝까지 보면 '오해'가 풀릴 것이라는 게 JTBC 입장이다.
일부 배우의 팬들은 이한열 열사 기념관에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하는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까지 하며 '설강화'를 두둔하고 있다. 혹여 드라마에 대한 문제제기가 받아들여져 조기 종영을 하더라도 배우들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정말 그럴까. 사실 '설강화' 논란은 예견돼 있었다. '설강화'가 '이대기숙사'라는 가제로 알려졌을 때부터 문제가 많아 보이는 인물 설정과 시놉시스에 드라마 팬들 사이에서는 "네 배우 '이대기숙사' 출연한다"는 말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됐다.
관계자들도 이런 분위기를 모를 수 없다. '설강화' 방영을 1~2달 여 앞둔 상황에서 만난 관계자들은 모두 '설강화' 이야기를 했다. 연말을 떠들썩하게 할 작품으로 꼽으면서.
"혹시 소속 배우 분이 '설강화'에 출연하시냐"고 묻자 손사래를 치며 "큰일 날 얘기하지 마시라"고 하는 관계자도 여럿이었다. 그만큼 '설강화'에 출연하면 곤란한 일이 생길 거라는 걸 업계에서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런 상황 속에서 배우들은 출연을 결정했다는 의미다.
JTBC 측은 21일 공식 입장을 내고 "'역사 왜곡'과 '민주화 운동 폄훼' 우려는 향후 드라마 전개 과정에서 오해의 대부분이 해소될 것"이라며 "부당한 권력에 의해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억압받는 비정상적인 시대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제작진의 의도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JTBC가 이런 입장을 내지 않았더라도 '설강화'가 군부독재를 옹호하고 민주화 운동에 대한 간첩 개입설을 전면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리라는 건 누구나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설강화'에서 악한 안기부와 그 안에서 희생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하더라도 '성찰하는 안기부', '대화가 통하는 상식적인 안기부 직원' 캐릭터를 넣었다는 사실을 면죄받을 수는 없다. 공공재 전파를 사용하는 방송 관계자들이 결과로 과정을 합리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