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잘 본 사람, 못 본 사람 모두 '오열'하게 하는 글 떴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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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30대가 정성 들여 새벽에 쓴 글
수능 본 학생들에게 전하는 응원

대망의 수능 날인 오늘(18일), 모두를 울릴 글이 등장했다.

이하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이하 뉴스1
이하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이하 뉴스1

이날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트 판에 '수능 7등급 난 내 인생이 망한 줄 알았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30대 여성으로, 자신의 과거 경험을 담담하게 풀어놨다. 특히 "수능 성적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그는 수능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인생의 첫 실패를 경험한 후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회상했다. 재수, 삼수까지 경험해 뼈 아팠던 일과 새로운 목표를 향해 도전했던 일들이 글 속에 모두 녹아 있다.

이어 20대를 지나면서 나름 깨달은 것들을 덧붙였다.

다음은 해당 글의 전문이다.


안녕~

난 지나가던 30대 이모?야.

지방 출장을 다녀와서 숨 좀 돌리니 내일이 수능이라고 하더라.

20대를 정신없이 살다보니 내가 수능을 3번이나 봤던 걸 기억도 못하고 살다가

내일이 수능인 걸 알고서 갑자기 가슴이 웅장해져서 글을 남겨.

인생에서 수능이 전부인 그 때를 너무 잘 알아.

나도 너희처럼 '정말' 열심히 공부했거든.

이 글은 누구보다 처절하게 3번의 수능을 실패했던,

이젠 꼰대가 되어버린 30대가

내일 수능을 볼, 혹은 내일 수능을 보고 와서 읽게 될 수험생 친구들에게

'ㅇㅇ 그래 살아보니 수능은 ㅈ도 아냐' 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써.

부정탄다고 생각된다면 읽지 말고!

각자 컨디션 조절 잘 하고!

난 2010년 부터 2012년 가을까지 총 3번의 수능을 봤어.

고등학교 때는 그냥 적당히 성적이 나왔으니 안일했다면

재수 때부터는 정말 잠자는 시간 빼고 매분 매초 공부했던 것 같아.

어렸을 때부터 난독증이 심했어서 공부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는데

그래도 진짜 독하게 열심히 해보고 싶더라.

고3 수능 점수가 역시나 아쉽게 나와서

서울에 있는 교회 숙소에서 자취하며 재수생활을 했는데

집값이 거의 없는 대신 주말에 새벽기도를 나갔어야 했어.

그 시간이 아까워서 새벽기도 끝나면 돌아와서 새벽공부하고

지하철 타는 시간 아까워서 영어 듣기는 지하철에서 공부하고

밥먹을 땐 밥먹느라 손이 없으니 EBS 영어 지문 듣기 하고.

학원 끝나고 돌아오는 길엔 영어 단어 외우고.

읽기가 힘들 땐 PMP로 강의 내용을 들으면서 공부했는데

음악 들으면서 공부하는 줄 알고 재수학원 조교님한테 오해받아 혼난적도 있었어.

아 요즘 친구들은 PMP를 모를 수도 있겠구나

여튼, 내 인생에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았던 적이 지금 돌이켜봐도 없는 것 같아.

경쟁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보니

그냥 혼자 성적 올리는 재미에 빠졌었고,

전국구급 능력자는 아니어도

너희처럼 전과목 1등급 찍어보겠다고 아등바등 공부했었어.

다른 모의고사 성적표랑 수능 성적도 인증하려 했는데 맥이라서 성적표 다운로드가 안된다네(?)

저 성적표는 대학 때 멘토링 프로그램 지원한 서류에 남아 있어서 괜히 첨부한다.

여튼, 최소로 목표했던 대학은 그래도 무난히 갈 수 있는 성적이 줄곧 나왔었고,

점수가 잘 나오면 상향지원해야지, 하면서

실패할 거라는 생각은 아예 안했던 것 같아.

하지만 사람 일은 언제나 예측할 수가 없더라.

재수 때, 너무 끼니 걸러가면서 무리하게 공부를 해 몸이 망가졌는지

수능날 1교시에 난독증이 너무 심하게 왔어.

지금도 지문 내용은 기억이 안나는데 쓰기 파트에서 글자를 인지하는데 1시간을 넘게 쓰면서

비문학이나 문학 지문은 읽지도 못하고 거의 모든 정답을 번호 하나로 찍고 나왔어.

정말 열심히 준비한 1년이었는데 1교시를 번호 1개로 찍고 나니,

복도에서 그냥 하염없이 통곡하다가

그냥 남은 시험을 포기하고 나오려고 했었어.

근데 부모님 생각에 그래도 끝까지 앉아 있게 되더라.

그 때 언어영역이 7등급, 나머지 영역이 4, 5등급 이었던 것 같아.

재수까지 실패하니 정말, 사람이 이러다가 죽겠구나 싶더라.

수능 끝나고 자살했다는 수험생들 뉴스를 보면 내 뉴스가 나오는 것 같은 착각도 들었어.

3수는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대학이 인생의 전부로 알고 있었는데

실패할 줄 모르고 수시 지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갈 수 있는 대학이 아예 없어진 상황이 되자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정말 공황상태였던 것 같아.

재수에 실패한 뒤, 나는 그 이후로 몇년을 침대에서 잠을 못잤어.

밤만 되면 천장이 나한테 내려오는 것 같아서 깔려 죽을 것 같더라고.

침대에서 자면 천장이 가까우니까 숨이 막혀 죽겠더라.

신앙심이 정말 깊어 한동대학교에 진학하려 했던 학생이었는데

다니던 교회도 그 때 그만 뒀고, 처음 담배에 손도 대고

매일 술만 먹고 지냈던 것 같아.

주변에 힘든 일 겪는 친구들도 있는데

다른 사람 힘든 일에 공감을 아예 하지를 못했어.

그게 대체 왜 힘들어, 너 나만큼 열심히 살다가 망해 봤어? 하는 생각 때문에.

부모님 얼굴도 한동안 제대로 못쳐다봤어.

성적에 별로 연연하지 않는 부모님이셨지만 그래도 기대가 있었기에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알았기에 담담한 척 했지만 뒤에서 많이 우셨을거야.

재수를 망해서 정말 인생이 망한 줄 알았어.

그때는 지난 20년을 대학을 무조건 가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학 가는 것 말고는 미래가 없는 건 줄 알았어.

그러니 어쩌겠어, 다시 또 대학가려고 공부 해야지.

3수 때는 재수 때 이미 열심히 다 해놔서 컨디션 조절하며 공부했어.

위에 인증한 성적이 3수 마지막 평가원 모의고사 때 성적이야.

사회탐구 반영도 2과목으로 줄었다보니 성적에 대한 부담이 적었고,

특별히 점수를 더 높이기 보다 유지하는 공부를 했었어.

난독증이 발목을 잡으니 정신과 상담도 받고 약도 먹고

그냥 가벼운 책 읽으면서 계속 글 읽는 것에 익숙해 지려하고.

수능 약 30일 전부터는 수능에 익숙해진다고

황현필 선생님이 추천했던 1일 1회 전과목 모의고사를 하면서

30번 정도 모의고사를 본 것 같아.

재수 때는 학원 끝나면 공부하러 갔는데

삼수 때는 합격 후기 같은 거 읽으면서 마음 관리하고.

재수 때는 밥도 안먹고 공부하느라 영양실조도 걸려 컨디션 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에

삼수 때는 고향에서 최대한 잘 먹고 건강 챙기면서 편하게 지내려 했던 것 같아.

하지만 재수 때 트라우마를 이기기 어려웠을까.

마음관리 한다고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역시나 난독증 때문에 1교시부터 고생을 했어.

결정적으로 누군가의 핸드폰이 울려서 가방 검사를 했는데

내 가방에서 PMP가 니가 왜 여기서 나와........? 같은 상황.. 이 됐어.

전원이 꺼진 PMP가 내 가방에 있는 지 몰랐는데, 이게 적발되면서

실격처리 당하지 않기 위해 교무실에서 울며불며 애원하다가 멘탈이 터져 나머지 시험을 시원하게 말아 먹었어.

시험관 선생님들이 얘는 3수고, PMP는 배터리가 나가 꺼져있고, 정작 벨소리 시원하게 울린

휴대폰 범인은 못잡았으니 넘어가자 해서 선처해 주긴 하셨지만

그 때 아마 언어영역이 5등급, 나머지가 3,4 등급 정도 나왔던 것 같아.

3수 때는 내가 실패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어.

그래서 고등학교 때 내신으로 정말 최하위까지 하향지원을 했고

그나마 내신 성적에 맞았던 대학은 수능 최저등급을 맞추지 못해 다 떨어지면서

난 결국 3수 끝에 유일하게 합격한 지거국 대학에 '고등학교 내신'으로 진학했어.

그땐 정말 온 지구가 나 망하라고 최선을 다하는 것 같더라.

정말 MSG 아예 없는 실화야.

그런데 있잖아.

30살이 된 지금, 나 정말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아.

3년을 투자한 시간을 보상 받지 못했던 나의 대학 생활은

정말 끝도 모르게 염세적이었어.

어쩌다보니 4년 전액 장학생까지 되고 학비가 해결되니 인생에 더더욱 관심이 없더라.

적당히 점수만 유지하면 되니 수업도 안들어가고 술먹고 연애하고.

대충 살자, 적당히 살자.

어차피 열심히 해도 망할 일이면 망한다.

언니, 언니는 진로를 어떻게 할거야? 누가 물으면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알게 뭐야.

어렸을 때부터 법조계에서 일하는게 꿈이었는데,

어차피 노력해봤자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괜히 마음 약해져서 공부할까 하면

이젠 몸도 지쳤는지 도서관엔 거의 그냥 잠자러 갔던 것 같아.

꿈도 없고, 미래도 없고, 취직에 관심도 없고.

그냥 장학금 안날라가게 적당히 성적 유지하다가 대학 졸업이나 해야지.

부모님한테는 더이상 금전적으로 손벌리기도 어렵고

몸쓰는 일을 하고 나면 아무 생각이 없어져서

그 당시에 알바를 기본 3개씩 했던 것 같아.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대학가서 2년을 그렇게 살았어.

그러다 우연히 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보는데

영화를 너무 못 만든거야.

내가 좋아하는 배우인데.

순간 너무 화가 치밀더라고.

내가 만들어도 저거 보다는 잘 만들겠다.

그래서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영화를 어떻게 만드는 지도 모르는데, 영화 관련 전공도 아예 아닌데.

친구들이랑 단편영화 하나를 3개월간 만들었어.

그리고 나서 깨달았지.

아 영화 만드는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그런데 그 과정이 나한테 너무 재미있었던 거야.

그래서 괜히 어디서 영화 일이 있으면 기웃거리고 하다보니

자꾸 일하게 되고, 작품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게 되고.

영화 제작을 하든 영화제 일을 하든 그 일들이 너무 재미 있어서

내가 20대 초반에 받았던 상처들이 조금씩 치유가 되더라고.

그러다 대학 졸업 무렵 진지하게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는 시기가 왔을 때

집안 사정이 어려워 지면서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고

본의 아니게 대학 다니면서 했던 일들이

전부 영화와 관련된 것들이다 보니 그것이 경력이더라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직업이 되어버렸어.

직업으로 영화를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아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돼.

내가 미팅했던 사람 중에는 중견기업 회장님도 있었고, 재벌 4세쯤 되는 사람도 있었고,

유명한 연예인들도 있고, 공무원, 의사, 경찰, 문구점 사장님, 알코올 중독자, 사고로 다리를 잃은 사람, 대기업 과장님, 건물주 등등.

영화/드라마에 자문을 요청하거나 기획개발을 하거나 협찬 계약을 하는 등의 업무 때문에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것 같아.

그런데 있잖아.

거기에선 '대학'이 중요한 게 아니었어.

물론 학력이 무시할 수 없는 성취이고, 꼭 존중받아야 할 하나의 기준이라는 생각은 분명 갖고 있지만

그 학력을 발판으로 했든, 아니면 발판으로 하지 않았든

사회에서 어떤 자리에서 위치 했을 때

진짜 그 사람을 평가하고 좌우하는 건 학력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의 됨됨이와 능력치 인 것 같아.

물론 이 글을 읽는 친구들 가운데

나는 대기업에 입사해서 승승장구 해야하는데 그럼 같은 학력을 가진 라인을 타서 성공해야 하는데...

혹은 나 법조인이 될 거라서 SKY를 나와서 그 라인을 타야 하는데...

방송국에 입사하려면 학벌이 우선 중요한 것 같은데...

뭐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친구들도 있을 수 있지만.

하지만 그게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 절대 기준은 아닌 것 같아.

대기업 임원, 법조인, 방송국 PD 등등.

너가 그렇게 중요시하는 학력 아쉬운 분들 많더라.

그런데도 일 잘해. 존경스러워.

함께 협업해서 감사했던 분들도 많아.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말로만 듣고 그러려니 상상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

더 넓은 세계가 있어.

극단적인 표현일 수 있지만, 그냥 내 경험으로는

유명한 대학 나와서 갑질하다가 사람들이 뒤에서 망해라 망해라 기도하는 사람보다

직업이 없더라도 인터뷰 하다가 갑자기 자기가 담근 된장 한번 먹어보라고 선물로 주던 사람이 나는 더 매력있고 감사하더라.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한 자리에서 30년 이상 가게 운영하신 어르신이

IMF 풍파와 재개발 바람에도 버티고 장사하신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게 돼 존경스럽고

같은 명문대를 나왔어도 하나라도 더 문제 없게 친절하고 꼼꼼히 봐주는 변호사가 얼마나 더 사랑받는지 아니까

20대 초반, 정말 죽음이 눈에 보일 만큼 힘들었던 입시 실패의 기억이 10년이 지난 이제와서는 나 그 때 정말 열심히 살았어, 앞으로도 무슨 일 있으면 적어도 그만큼 열심히 다시 해 볼 수 있을 것 같애,

그 때 실패했지만 나 그 힘들었던 거 다 이겨냈어

라는 하나의 자산이 된 것 같아.

일자리 많이 없는 시대야.

명문대 나와서 여전히 방황하는 사람들도 많고

입시 실패했어도 월 수천 벌면서 잘먹고 잘사는 사람들도 많아.

쓰니이모?는 월 수천을 벌진 않지만

적성에 맞는 일을 운좋게 찾아서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남한테 손 안벌리고 잘 먹고 잘 살고 있어.

나도 이제 30대니 더 경력 쌓으면서 열심히 일해서

더 좋은 영화 만드는데 일조해야지.

솔직히 아쉬워.

수능을 망해서 학벌이 아쉬운게 아니라

그때의 내가 성취했다면 어렸을 때 꿈인 법조인의 길을 갈 수 있지 않았을까,

혹은 더 가치있는 일을 지금 또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야.

하지만 내가 지금 만족하는 건 정신승리가 아니라

우연히 만난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내게 너무 가치 있어서,

그리고 이 길을 걸으면서 만난 인연들과 경험들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해서

그 시절의 실패가 나에게 자양분이었구나 여겨질 수 있는 것 같아.

내일 수능 보니?

걱정하지마.

어차피 벌어질 일은 벌어져.

수능은 돌이켜보면

인생을 결정하는 중대사가 아니라

자기가 인생을 걸고 준비한 것에 대해 처음으로 부딪혀보는 시험인 것 같아.

살면서 인생을 걸어볼만한 일들이 가끔 있는데, 그 첫번째 순간 인거지.

그러니, 그냥 너가 준비한 만큼 그 기량을 다 할 수 있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실수하지만 않게, 모두에게 공평하게.

교통사고처럼 닥칠 수 있는 어떤 불행만 나에게 닥치질 않게.

결과에 대한 부담보다 과정을 이겨내는 힘이 내게 더 있게.

그렇게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

그리고 즐겨봐.

이런 압박을 내가 얼마나 잘 이겨볼 수 있는지.

비록 이 글을 쓴 이모는 실패했지만, 실패해도 괜찮아.

수능에 성공해도 어차피 뒤에 인생을 걸만한 수많은 일들이 널 기다리고 있단다^^

하지만, 첫 관문을 너가 무사히 지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해.

그 또한 할 수 있어.

수능 이 끝난 후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수능 잘봤니?

세상은 넓어.

수능을 잘 봤으면, 또 정신차려야해.

학벌이 인생의 전부가 아냐.

이제 어른이라 더 이상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아.

너가 가진 학벌을 발판삼아 더 좋은 인품을 가진, 더 실력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해.

남들보다 더 좋은 결실을 얻게 된 것에 꼭 감사해.

누군가에게 닥쳤을지도 모를 불행이 너에겐 스치지 않았음을 꼭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정말 수고했어.

수능 망했니?

20대 때 초반 나를 지배했던 생각이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의미로 물어볼게.

너 나만큼 열심히 공부하다가 이만큼 망해봤어?

그래도 안 죽어. 그냥 살아.

나도 내가 영화로 먹고 살 줄은 몰랐는데

인생 한 치 앞을 몰라.

살다보면 내가 가진 신념이나 가치가 시절에 따라 매번 바뀌기 마련이고

그 시절도 매번 바뀌어.

그냥 조금이나마 내가 편한 방향으로 몸을 뒤척이며 눕다 보면

어떤 순간이 와.

내 길이구나 하는 순간이 와.

그냥 수능을 잘 봤든 못봤든,

그냥 남한테 폐만 끼치지 말고 그냥 한번 있는 대로 살아봐.

열심히 살든 막살든, 그냥 어느 때가 오더라.

그 때가 오면 알거야.

내 학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됨됨이와 능력치가 중요하구나 하고.

글을 쓰다보니 12시가 넘어서 수능 당일이 되어버렸는데,

그럼에도 내가 겪었던 아픔을 오늘 수능 보는 친구들은 겪지 않기를

오늘 밤엔 기도하고 잘게.

너무 가슴이 웅장해져 버려서 말이 길었네.

너무 고생 많았어. 얼마나 고생했는 지 정말 잘 알아.

이 글을 읽은 너에게 조금이나마 좋은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응원한다!

PS. 그리고 혹시 수능이 끝나고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일단 놀렴. 고생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