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모 방'까지… 50년 전에 부의 상징이던 아파트, 지금 가보면 더욱 놀란다

2021-07-23 16:35

한강변 모래위에 지어진 고급아파트
'아파트붐' 시초… 지금도 초고가주택

1962년 겨울 6개 동으로 1차 준공된 한국 최초의 단지식 아파트 마포아파트. 첫 임대 공고 당시 입주 신청자가 공급 세대수의 10%도 안됐다. 사람들은 연탄가스가 배기관을 타고 6층으로 올라가 공기 중으로 빠져나간다는 설명을 믿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대한주택공사(현 LH) 건축부장이 술을 마시고 가스가 가장 많이 샌다고 알려진 방에 들어가 하룻밤을 보냈다. 그제서야 450세대가 입주를 마쳤다.

박철수 서울시립대 교수의 새 책 ‘한국주택 유전자’에 나오는 이 일화는 60년 전만 해도 아파트가 지금처럼 과시의 대상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에서 아파트의 위상이 처음부터 높았던 것이 아니다. 일제 치하 관사용으로 첫 등장한 아파트는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임시방편의 서민용 거처 쯤으로 여겨졌다. '앞마당도 없는 고층 집’에 대한 거부감이 컸던 것이다.

1970년대 서울 한강맨션아파트 / 도서출판 마티
1970년대 서울 한강맨션아파트 / 도서출판 마티

한국에서 아파트를 욕망의 대상으로 바꿔놓은 건 1970년 서울 동부이촌동에 들어선 '한강맨션'을 꼽는다. 국내 최초로 준공 이전에 모델하우스를 지었고, 국내 최초로 프리미엄(웃돈)이 붙은 아파트 단지여서다.

한강맨션 부지는 과거 백사장이었다. 오랜 기간 서울 시민의 여름 피서지로 각광받은 공간이었다.

이 백사장을 메워 택지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은 1962년 서울시 사업으로 시작했다. 하천부지를 택지로 조성해 매각하면 주택난을 해소하고 시비(市費)도 벌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한강과 가까운 땅에 건설부 산하 수자원개발공사가 1968년 택지조성 작업을 진행했다. 이 땅을 대한주택공사(현 LH)가 매입해 지은 단지가 한강맨션이다.

1956년 서울 한강 인도교(현 한강대교) 부근의 백사장 모습. 시민들이 강수욕을 즐기고 있다. / 서울역사편찬원
1956년 서울 한강 인도교(현 한강대교) 부근의 백사장 모습. 시민들이 강수욕을 즐기고 있다. / 서울역사편찬원

한강맨션은 기존 아파트와 뚜렷한 차별성을 내세웠다. 이전 마포아파트(9평)보다 훨씬 넓은 27~55평형 660세대로 구성된 단지는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교육 시설과 어린이 놀이터, 정원, 주차장, 쇼핑센터 등을 갖췄다. 초소와 경비원도 배치했다. 현재의 아파트 단지에서 나타나는 ‘빗장 걸기’가 시작된 것이다.

한국 최초로 알루미늄 새시와 상시 온수 공급 시스템도 장착했다. 32평형 이상에선 중산층 수요에 맞추기 위해 부엌 근처에 식모방을 조성했다. 당시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한 젊은 여성들이 부유한 가정에 식모로 일하는 일이 많은 점에 착안했다.

관건은 건설비 조달. 대한주택공사는 모델하우스를 세우고 주택을 선분양해 건설비용을 충당했다. 지금은 선분양이 일반적이지만, 후분양이 당연하던 당시엔 공급의 대전환이었다.

신문지면광고로 나온 한강맨션 분양모집 공고 / 온라인 커뮤니티
신문지면광고로 나온 한강맨션 분양모집 공고 / 온라인 커뮤니티

초기에는 분양이 안 돼 주공 직원들에게 할당제 권유 판매를 시키는 등 입주자 유치 경쟁을 벌이기도 했으나 어느새 매진돼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었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분양가 340만원의 27평짜리가 50만원, 395만원의 32평이 70만원, 465만원의 37평이 110만원, 645만원 이상의 51평과 55평짜리엔 200만원까지의 프리미엄이 첨가돼 매매됐다.

서울 한강맨션 아파트 / 네이버 부동산
서울 한강맨션 아파트 / 네이버 부동산
서울 한강맨션아파트 / 네이버 부동산
서울 한강맨션아파트 / 네이버 부동산

분양가가 세다 보니 오직 부유층만 주인이 될 수 있었다.

한강 조망권까지 갖춘 덕에 '51·55평형에는 큰 회사 사장이, 32평형에는 회사 중견급 간부나 탤런트·문인·영화배우가, 가장 작은 27평형에는 신중산층 신혼부부가 산다'는 언론 보도까지 나왔다.

한강맨션의 성공 이후 삼익·한양·라이프 등 민간 건설업체가 잇따라 아파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1978년 국내 첫 대단위 아파트 단지인 잠실주공아파트가 준공되면서 아파트는 한국 도시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로 자리 잡았다.

한강맨션은 준공 50년이 지난 현재도 최고가 단지 중 하나다.

서울 강북 재건축 시장 대어(大漁)로 지목되면서 시공권 확보를 위해 대형 건설사간 물밑 경쟁에 불이 붙었다. 재건축이 속도를 내면서 집값도 출렁이고 있다.

가장 최근 거래된 전용 90㎡ 타입은 지난 4월 28억원에 팔렸다. 이전 신고가였던 26억원에서 두 달여 만에 2억원 올랐다. 전용 87㎡ 타입은 지난 3월 25억원에 팔렸는데, 넉달 새 2억6000만원 뛰었다.

home 안준영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