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에 있는 요상한 모양의 이 아파트,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네요

2021-01-25 09:51

풍납토성 경관보호 위해 아파트 단면 '싹둑'
시세 잠실 절반 수준… 재건축도 해답 없어

통상 아파트는 천편일률적으로 성냥갑처럼 설계된다. 한 평이라도 늘리기 위해 용적률을 극대화하는 탓이다. 한국의 아파트가 '닭장' '군대 병영'이라는 비판이 붙는 이유다.

그런데 의도치 않은 디자인으로 서울 천호대교와 올림픽대로를 지나는 이들의 시선을 뺏는 아파트가 있다.

한 면이 마치 피라미드같기도 하고, 누군가에 의해 칼로 싹둑 자른듯이 보이는 이 건물은 대체 왜 이렇게 지어진 걸까.

싹둑 잘린 아파트 단면

서울 풍납동 씨티극동아파트 / 온라인 커뮤니티
서울 풍납동 씨티극동아파트 / 온라인 커뮤니티
서울 풍납동 씨티극동아파트 / 온라인 커뮤니티 slr4u
서울 풍납동 씨티극동아파트 / 온라인 커뮤니티 slr4u

올림픽 대로를 따라 서있는 특이한 아파트의 정체는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씨티극동 아파트다.

1998년 5원 준공된 3개 동 442세대 규모의 중형 단지다. 7층에서 23층으로 최고층의 차이가 크며, 전용 59㎡부터 201㎡까지 다양한 평형으로 구성돼 있다.

시세가 가까운 잠실의 절반 수준이면서 한강뷰에 현대백화점, 서울아산병원 등 생활 인프라가 뛰어나 가성비 좋은 아파트로 꼽힌다.

건물 디자인까지 바꾼 문화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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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파트 한 동의 외관이 독특하다. 가위로 싹뚝 자른 것 같기도 하고, 대형 미끄럼틀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씨티극동의 3개 동 중 사선(斜線: 비스듬하게 그은 줄) 디자인이 적용된 곳은 한강 변의 101동이다.

'인지도를 높여 집값을 끌어 올리려 했다'는 등 의도한 특화 설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름의 사연이 있다.

주변에 있는 '풍납토성'으로 인해 이런 시선강탈 디자인을 갖게 됐다. 문화재 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근처 건축물의 높이를 제한하는 앙각(올려다본 각) 규제 때문이다.

서울 문화재 보호조례에 의하면 문화재 보호구역 내에 있는 건축물의 높이는 경계 지표면에서 문화재 높이를 기준으로 앙각 27도 이내로 한정돼 있다. 규정에 맞춰 최대한 세대수를 확보하도록 아파트를 짓다 보니 이렇게 사선 모양이 됐다.

한강변과 어우러진 특이한 디자인이 아니라, 문화재 탓에 명물 아닌 명물 아파트가 돼 버린 거다.

하루가 멀다하고 뛰는 타 지역 아파트들과 달리 씨티극동은 송파구 한강변 아파트에 더블 역세권(5·8호선)임에도 시세가 인접 잠실 지역의 절반에 불과하다.

뛰어난 인프라와 입지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낮게 형성된 것은 풍납토성이라는 입지 때문이다.

20여년 전 준공 시점과 비교할 때 지금의 풍납토성의 역사적 가치가 상승된 영향이 크다. 과거 일반 토성으로 여겨졌던 풍납토성은 현재 백제 초기의 도읍지인 위례성으로 추정되면서 역사적 가치가 급등했다.

home 안준영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