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를 출입하는 위키트리 윤석진 기자가 오늘(8일)부터 매주 1회 '청와대 이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청와대는 국민들의 일상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국가 기관입니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 작은 움직임도 늘 국민들의 관심 대상입니다. 하지만 대통령과 청와대는 국민들과 심리적, 물리적으로 거리가 상대적으로 먼 곳입니다. 대통령과 청와대를 둘러싼 궁금한 이야기들을 하나씩 속 시원하게 풀어 드리겠습니다. 알고 싶고, 듣고 싶은 청와대 이야기에 독자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알차고 재미 있는 이야기로 매주 토요일 오전에 찾아 뵙겠습니다. <편집자주>
[윤석진 기자의 청와대 이야기] (1) 안 풀리는 문 대통령의 휴가 정치
'휴가 운' 없는 문 대통령 이태 연속 '취소'
문재인 대통령이 올 여름에도 휴가를 가지 못했다. 지난해에 이어 이태 연속이다.
문 대통령은 사실 이번 주 일주일 여 휴가 일정을 잡았었다. 그 요량으로 지난 7월 31일, 금요일에 업무를 마치자마자 일찌감치 청와대를 떠났다. 이날 오후 늦게 도착한 경남 양산시 매곡동 사저에서 주말을 보냈다. 올 여름 휴가 베이스 캠프로 정한 곳이었다.
그런데 모처럼 계획한 문 대통령의 휴가 계획에 큰 변수가 생겼다. 지난 주 후반부터 시작된 중부지방 집중호우가 그것이었다. 주말을 지나면서 사망자가 발생하고, 이재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집중호우가 이번 주 내내 계속 된다는 기상청 예보도 심상찮았다. 문 대통령은 결국 지난 월요일(3일) 아침 휴가 취소를 결정했다.
이날 오전 10시 40분쯤 문 대통령이 계획된 휴가 일정을 취소했다는 윤재관 청와대 부대변인 명의의 서면 브리핑이 나왔다. "호우 피해 대처 상황 등을 점검할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였다. 윤 부대변인은 “추후 휴가 일정은 미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뉴스가 ‘속보’ 형식으로 전해지는 사이 문 대통령은 3박 4일만에 청와대 집무실로 복귀했다.
문 대통령은 정말이지 휴가 운이 지지리도 없는 편이다. 올해는 예상치 못한 천재지변을 만들어 낸 하늘이 도와주지 않은 형국이었다. 지난 해에는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발목을 잡았었다. 7월 4일부터 일본이 느닷없이 대 한국 수출규제조치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1년여가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일본의 몰상식한 행태였다. 이 바람에 문 대통령은 그해 7월 28일부터 8월2일까지 잡았던 휴가 계획을 시작 하루 전에 통째로 반납하는 결정을 내렸다.
지난 해는 아베 총리, 올해는 천재지변이 '발목'
문 대통령의 여름휴가는 거슬러 올라가면 2017년 취임 첫 해부터 순탄치 못했다. 그 해에는 북한이 문 대통령의 휴가 일정을 갑자기 뒤흔들었다. 역시 휴가 하루 전날인 그해 7월28일 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 14호’를 발사하는 도발을 감행한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국민적 충격파가 지금보다 매우 컸던 때였다.
자연스럽게 문 대통령이 휴가를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예측이 흘러 나왔다. 문 대통령은 실제로 휴가 당일 새벽같이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대응 지시를 내렸다. 그런 후에야 12시간쯤 늦게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강원도로 향했다. 문 대통령은 평창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국제적 홍보 맨 역할을 자처했다.
문 대통령의 그해 휴가지는 경남 진해의 군 휴양 시설이었다. 당시 청와대는 이에 대해 "북한 미사일 발사 등 긴급한 상황에서도 관련 내용을 신속히 보고받고, 화상회의 등을 통해 군 통수권자로서 지휘권을 행사하는데 최적의 장소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이 휴가라고 해서 중요한 나랏일을 팽개칠 수는 없는 것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문 대통령이 그나마 계획했던 여름휴가 일정을 온전히 다 쓴 것은 2018년이었다. 문 대통령은 김정숙여사와 함께 그해 7월 30일부터 8월 3일까지 5일간 충남 계룡대에서 휴가를 보냈다. 당시 청와대는 문 대통령 부부가 대전 장태산휴양림에서 산책을 하는 사진 등을 공개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또 휴가 기간에 그곳에서 몇권의 책을 읽는 여유도 누렸다.
네번 중 2018년만 휴가 일정 온전히 다 써
문 대통령이 계룡대, 진해 해군 기지 등 군 시설을 휴가 때 이용한 것은 경호가 수월하다는 잇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보다는 옛 청남대(靑南臺) 와 청해대(靑海臺) 등 대통령 전용 휴양시설이 없어진 탓이 컸다.
남쪽 청와대라는 뜻의 청남대는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인 1983년 12월에 충북 청주시 문의면에 지어졌다. 대청호반이 둘러싸고 있어 그림 같은 경치로 유명하다. 2003년 4월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의해 국민들 품으로 돌아와 지금은 관광 명소로 변신했다. 그때까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애용한 휴양 시설이었다.
바다 청와대란 뜻의 청해대는 경남 거제시 저도(猪島, 돼지섬)에 있어 ‘저도 별장’이라고도 불렸다. 1950년대 해군이 지은 별장을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자주 찾으면서 대통령 휴양지로 굳어졌다. 1973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용 시설을 만든 뒤 청해대라는 공식 명칭까지 붙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족, 측근들과 함께 1979년 서거 전까지 거의 매해 이곳에서 휴가를 보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취임 첫 해인 2013년 여름휴가 때 이곳을 찾았다. 젊은 시절 아버지와 함께 찾았던 이곳에 많은 추억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이 백사장에서 직접 ‘저도의 추억’이라는 글씨를 쓰는 장면이 공개돼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청해대는 청남대 완공 이후 대통령 별장으로서 수명을 다했다. 그리고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권위주의 청산’의 이름으로 해군에 관할권을 이양하면서 이는 공식화 됐다. 그런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청해대를 자주 찾으면서 대통령 별장으로 한때 부활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도 2019년 7월30일 저도를 딱 한 번 방문한 적이 있다. 대통령 휴양지로서 저도를 찾은 게 아니라 ‘저도 개방’이라는 공약을 이행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저도는 그해 9월 17일부터 일반 국민들에게 시범 개방되었다. 지금은 거제시 장목면 궁농항에서 유람선이 운행되고 있다.
올해 '단 하루'도 휴가 못가 연차 소진율 '0%'
대통령의 휴가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단순한 휴가와는 그 성격과 차원이 다르다. 역대 대통령들은 여름 휴가를 통해 새로운 국정 구상을 하고, 현안에 대한 해답을 찾는 시간으로 활용했다.
휴가 때마다 청남대를 자주 찾았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청와대로 돌아와 ‘깜짝 발표’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 전 대통령이 취임 첫 해인 1993년 청남대에서 휴가를 보낸 후 ‘금융실명제 실시에 관한 대통령 긴급명령’을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이 청남대로 휴가를 떠나면 ‘청남대 구상’이라는 용어가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비단 김 전 대통령 뿐만 아니라 역대 대통령들이 휴가를 다녀오면 무게 있는 정치적 메시지를 내놓곤 했다. 문 대통령도 이번 휴가가 끝나면 현재 혼돈을 거듭하고 있는 부동산 정책 등과 관련 새로운 국정 구상이 나오리라는 예상도 있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올해들어 휴가를 단 하루도 못갔으니 '휴가 구상'도 당연히 없었다.
문 대통령은 당분간 휴가 일정을 잡기가 여의치 않아 보인다. 현직 대통령이 가장 무게 있는 메시지를 발표하는 8.15 광복절 등을 눈앞에 두고 있어서다.
문 대통령은 ‘휴가 운’이 따라주지는 않는 편이지만 휴가는 자신부터 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심지어 취임 당시 ‘연차 휴가 전부 소진’을 공개적으로 약속했을 정도였다. 실제로 재임 중에도 여러 차례 “연차휴가를 다 사용할 계획‘을 수시로 밝혔었다. 공직자들이 자신의 눈치를 볼까봐 먼저 모범을 보이는 배려의 뜻도 숨어 있다는 것이 청와대 참모진들의 해석이다.
문 대통령이 이렇듯 큰 소리는 쳤지만 정작 연차휴가 소진율은 낮은 편이다. 그 소진율을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7년 취임 첫 해 연차 14일 중 8일(57.1%), 2018년 21일중 12일(57.1%), 2019년 21일 중 5일(23.8%)에 그쳤다. 문 대통령의 올해 연차 소진율은 0%다. 연차 휴가를 단 하루도 쓰지 못했다는 얘기다. 물론 주말에 쉬는 것은 연차 휴가와는 별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