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삼성)가 잉글랜드 런던 연고의 명문 축구 클럽 ‘첼시’를 후원한 적이 있습니다. 2000년대입니다. 축구 팬들에겐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영웅 디디에 드로그바가 ‘SAMSUNG’ 로고가 떡 박힌 유니폼을 입고 잉글랜드를 평정한 기억이 낯설지 않죠.
최근 삼성이 해외 축구 클럽을 후원하겠다는 얘기가 들려옵니다. 대상은 이탈리아 세리에A 소속 클럽 인테르 밀란. 첼시와의 공통분모라면 클럽을 상징하는 파란색과 두 팀을 거쳐 간 조세 무리뉴 토트넘 훗스퍼 감독 정도입니다.
삼성은 2005년부터 약 10년간 첼시를 후원했습니다. 삼성과 첼시의 인연을 살펴볼까요. 포르투갈을 평정하고 잉글랜드에 온 무리뉴 감독이 첼시 감독으로 부임한 지 1년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삼성은 당시 주력 휴대폰 ‘애니콜(Anycall)’을 내세워 마케팅 효과를 누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현지 환경을 고려해 ‘SAMSUNG’ ‘SAMSUNG mobile’로 네이밍 노선을 바꿨죠.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SAMSUNG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첼시 군단은 2005년 프리미어리그를 재패하고 FA컵 우승을 차지하는 등 그야말로 승승장구했죠. 1년 동안 전 세계 약 30억명에게 삼성을 각인했습니다. 2011년 삼성의 영국 시장 매출은 후원 이전보다 3∼4배 이상 올랐습니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은 2012년. ‘포스트 무리뉴’로 불린 빌라스 보아스 감독이 뜨뜻미지근하자, 디 마테오 감독 대행 체제로 변화를 준 첼시는 반전 드라마를 쓰면서 바이에른 뮌헨을 꺾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합니다. 당시 동점 헤딩골을 쏘아 올린 드로그바를 비롯해 빅이어를 든 첼시 전사들의 유니폼엔 모두 SAMSUNG 로고가 박혀 있었습니다.
수십억 명이 시청하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입니다. 승부차기까지 갔던 만큼 마케팅 효과는 더 컸겠죠. 삼성이 첼시에 후원하는 비용(200억~300억원)을 메우고도 남는 천문학적 효과를 당시 누렸을 것으로 보입니다. 첼시와 함께한 10년 동안 삼성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첼시도 더 견고한 명문 클럽이 됐죠. 2015년, ‘블루 동맹’은 10년의 동행을 끝마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삼성이 새 파트너를 선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탈리아 현지 매체가 ‘인테르’를 삼성의 새 파트너로 콕 찍었습니다. 인테르는 이탈리아 세리에A에선 잔뼈가 굵은 명가입니다. 2010년 이탈리아와 유럽을 평정한 ‘트레블’ 구단이죠. 재밌게도 첼시에서 막 인테르로 적을 옮긴 무리뉴가 세운 업적입니다.
인테르는 브라질의 호나우두, 포르투갈의 루이스 피구 등이 몸을 담았던 곳입니다. 로멜루 루카쿠, 알렉시스 산체스, 애슐리 영에서 손흥민의 동료였던 크리스티안 에릭센까지 이곳 소속입니다.
삼성과 인테르의 조합은 지난 5월 유력 글로벌 축구 매체로부터 흘러나온 얘기입니다. 최근에도 현지 매체에서 인테르 새 후원자로 삼성이라는 이름이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삼성은 2017년 인테르 이름을 붙인 TV를 출시한 바 있습니다.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두 가지 사안을 변수로 고려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먼저 인테르 모기업이 중국의 최대 IT·전자 업체인 쑤닝 그룹이란 점입니다. 삼성과 함께 중국의 알리바바, 에버그란데가 스폰서 유력 후보군으로 떠오릅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죠. 쑤닝 입장에선 자국 기업에 먼저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삼성이 이미 세리에A 소속 유벤투스와 상생관계인 점도 변수입니다. 지난해 삼성은 ‘갤럭시 유벤투스 에디션’을 한정 판매하기도 했죠. 중요한 점은 인테르와 유벤투스가 ‘앙숙’이라는 것. 두 팀의 대결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빅매치입니다. 오죽하면 진정한 이탈리아 더비라는 이유로 ‘데르비 디탈리아(Derby D'italia)’로 불릴 정도입니다.
유벤투스는 1부 리그(세리에A)에서 승부 조작 문제로 단 한 번 강등됐습니다.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적인 명문 구단이죠. 인테르는 세리에A 토박이입니다. 인테르 입장에선 삼성이 유벤투스와 관계를 명료하게 정리하길 바랄 것 같습니다.
첨언하자면, 삼성은 예전의 삼성이 아닙니다. 첼시를 등에 업었던 2005년과 위상이 확연히 달라졌다는 얘깁니다. 전 세계인 모두가 아는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한 만큼 인지도 마케팅에 목매야 할 상황은 아닙니다.
삼성의 힘이었을까요. 첼시는 손흥민의 소속팀 토트넘 훗스퍼, 아니 그 이상의 두터운 국내 팬을 보유한 클럽입니다. 코트디부아르 내전을 중단시킨 드로그바는 ‘검은 예수’로 불리면서 특히 국내 팬들에게 큰 인기를 구가했죠. 넥슨 ‘피파 온라인4’에서 범접할 수 없는 ‘ICON(아이콘)’ 카드로 드로그바가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합니다.
잠깐 첼시에 몸을 담았던, 현 인테르 소속 로멜루 루카쿠는 체형이나 플레이 스타일에서 드로그바와 닮았습니다. 과연 루카쿠가 드로그바처럼 ‘SAMSUNG’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게 될까요? 축구 팬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삼성 관계자는 “인테르를 후원한다는 일부 보도 내용을 확인해본 결과, 아직까지 후원과 관련해 전혀 정해진 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해외 스포츠 구단 후원과 관련한 문제는 이탈리아 현지 법인에서 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인테르와 현재 스폰서 피렐리와의 계약 기간은 내년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