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챠’란 게임에서 좋은 아이템을 얻을 확률을 무작위로 선정한 시스템을 뜻한다. 이용자는 운 좋으면 구매 가격보다 높은 가치의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가 허다하다. ‘복불복’이라는 얘기다. 내가 지불한 돈이 때론 기쁨을 주나, 어느 날엔 휴짓조각이 돼버린다. 가챠, 곧 확률형 아이템은 국내 대다수 게임 업체의 대표적인 비즈니스 모델(BM)이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2018년 국회 국정감사 현장에서 ‘리니지’가 가챠로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목소리에 이렇게 답했다. “사행성은 요행을 통해 얻은 금품으로 하는 ‘도박’ 게임이다. ‘리니지’는 요행을 바라보고 금품을 취득하지 않는다.” 김 대표는 ‘리니지’는 사행성 유도와 거리가 멀고, 확률형 아이템은 기술적인 장치라고 했다.
기술적 장치로 엔씨소프트가 벌어들인 돈은 올 1분기에만 7311억원이다. 어느새 국내 코스피시장 ‘톱10’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웃집 사정은 어떤가. 넥슨은 유저들에게 ‘돈슨’으로 굳어졌다. 최근 ‘피파 온라인4’에서 유료 결제를 유도하는 ‘현질 부추기기’ 논란이 일자, 관계자는 유저들에게 영상을 통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이처럼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업계에선 ‘뜨거운 감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확률형 아이템이 사행성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법적 조치를 취한다고 밝혔다. 현재 자율규제로 실시 중이나, 하반기부터 뽑기 확률에 대한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업계 정통한 관계자는 “회사 수익 창출에 직결되는 만큼 난항을 겪을 것”이라면서 정부 조치에도 풍파가 예견된다고 했다.
해외는 확률형 아이템을 도박으로 판단할지를 놓고 지속적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벨기에에선 우연성·이익손실 가능성 등 도박의 구성 요소가 다분하다며 일부 게임의 가챠를 금지했다. 중국은 가챠에 대한 확률 공개를 규정한 법률을 시행하고 있다. 영국에선 최근 확률형 아이템을 도박법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선 게임 회사들의 BM인 확률형 아이템을 두고 과도한 규제를 가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이 돈 벌겠다고 나서는 게 무슨 문제냐는 것이다. 하지만 유저들은 이구동성으로 “도박보단 게임을 하고 싶다”고 반박한다. 제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확률형 아이템은 기업 수익 창출을 위한 수단일 수 있겠다. 타 게임업체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법적 규제도 옳지만, 자율규제도 맞는다. 수익 창출도 옳다. 그러나 게임의 본질을 지키는 것도 맞는다. 게임을 e스포츠로 지칭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돈만 좇다가 본질을 훼손해 e스포츠 명맥을 잃을 수 있다.
2000년대 ‘스타크래프트’로 e스포츠가 태동했다. 밥을 굶어가며 PC방에서 연습 삼매경에 빠졌던 게이머들이 삼성전자, SK텔레콤 등의 후원을 받아 게임단의 일원이 됐고 프로 게이머가 됐다. 이후 전 세계 게임 팬들에게 ‘아이콘’이 됐다. 대한항공 등 굴지 기업이 게임 대회를 후원했다. 대한항공 격납고에서 대회 결승전이 펼쳐지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게임은 스포츠가 될 수 없다던 이들도 한 번씩 PC방에서 ‘스타’ 한 판을 즐기게 됐다.
그 사이 ‘황제’ 임요환, ‘괴물’ 최연성, ‘천재’ 이윤열이 본좌로 불리며 역사를 써나갔다. 이후 각 종족별 최강자 이영호, 이제동, 김택용, 송병구가 ‘택뱅리쌍’으로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e스포츠를 탄생시켰던, 영원할 것 같았던 ‘스타리그’는 패망했다. 테란 종족이 대세였던 당시, ‘저그의 구세주’로 불리면서 본좌 반열에 오른 한 선수가 돈에 눈이 멀어 불법 도박 및 승부 조작 사건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돈만 좇다가 큰코다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