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 15명의 신원은 확인돼서 뒤쪽에 유가족 대기실에다가 명단을 붙여뒀습니다"
권금섭 이천시 부시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가족들은 소재 미확인자 명단이 붙은 '피해가족 대기실'로 향했다. 연락이 닫지 않아 '소재 미확인자'로 분류됐던 42명의 명단 중 15명의 이름 옆에 동그라미 표시와 병원 이름이 쓰였다.
동그라미로 표시된 사람들은 지문이나 소지하고 있던 신분증을 통해 경찰에서 신원이 확인된 사람이다. 병원 이름은 시신이 이송된 장소를 말했다. 채 다섯평이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작은 대기실로 통하는 문은 곧 유족들의 발길로 막혔다.
29일 오후 경기 이천시 모가면 소고리 물류창고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대책본부가 마련된 이천 모가 체육공원 실내체육관에 모였다.
브리핑 이후 가족들의 사망 사실을 확인한 유족들 일부는 통곡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한가닥 쥐고 있던 희망의 끈을 놓친 한 유족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자리에 쓰러지기도 했다.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들고 명단을 멍하니 바라보는 유족도 있었다.
이중 인천에서 온 A씨(여)는 남동생(40대)을 잃었다. 사고 현장에서 일하던 동생이 연락이 닿지 않자 사망자가 가장 많이(12명) 이송됐다는 경기의료원 이천병원을 찾은 A씨는 대책본부가 사고 현장 인근에 마련됐다는 말을 듣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이천병원에서 기자와 만났을 때 동생이 5월에 결혼할 예정이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7월로 미뤘다며 "제발 살아있기만 바란다"고 말했던 A씨는 동생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끝내 눈물을 흘렸다.
다른 유가족 B씨(여)는 "처음에 전화를 걸어서 확인했었을 때는 오빠가 명단에 없었다고 했는데 이후에 78명 명단에 이름이 있다고 확인했다"며 오빠가 오후에 근무에 투입돼 근무자 명단에 없었던 것 같은데 30분 정도 일을 하다 변을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체육관 밖에서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체육관 안에서 명단을 보고 나온 가족들로부터 오빠의 사망 사실을 확인한 B씨는 "엄마한테 이 이야기를 어떻게 이야기해"라며 주저앉아 오열했다.
신원을 확인한 가족들은 피해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나머지 가족들은 계속 체육관을 지켰다. 이후 30일 오전 0시40분쯤 추가로 10명의 신원이 확인되자 체육관은 다시 울음바다가 됐다. 다시 가족 대기실에서 확인하고 나온 가족들은 서서, 혹은 의자에 앉아서 일부는 바닥에 쓰러져서 울었다.
이천시 측이 '밤사이 추가로 신원이 확인되는 인원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니 가족들에게 시가 마련한 숙소에서 대기해 달라'고 안내했으나 곧 추가로 신원이 확인되는 피해자가 나오자 유족들 사이에서는 항의가 이어졌다.
오전 1시20분 현재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소재불명자 13명의 가족들은 체육관에서 이들의 생사가 확인될 때까지 기다릴 예정이다.13명 중 8명은 지문채취가 불가능해 DNA 감식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한다. 체육관 내부에는 유족들이 쉴 수 있도록 가림막이 설치되기도 했다.
이날 경기 이천시 모가면 소고리의 한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38명이 숨졌고 중상 8명 등 1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소방 당국은 혹시 모를 사망자가 더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밤샘 수색작업을 이어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