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성관계 영상 유출 피해자입니다” 서울대 대나무숲 글

2019-07-10 15:43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실을 얘기하고 싶었다”
사연 글에 위로와 안타까움 전하는 댓글 줄 이어

성관계 영상 유출 피해 남학생이 남긴 글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7월 페이스북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에 올라온 어느 글이, 올라온지 1시간도 되지 않아 좋아요 2천개·댓글 700개 이상이 달리며 이목을 모았다. 해당 글 작성자는 자신을 '성관계 영상 유출 피해자'라고 소개했다.

작성자는 "제가 남자인 탓에 피해자라 칭할 수 있는지 아직 혼란스럽지만, 어쨌든 이 글은 제가 한국에서 쓰는 마지막 글이 될 것이고 저는 내일 한국을 영영 떠난다"며 연인의 성적 취향이나 사적인 내용을 공개적인 곳에서 얘기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실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글을 써내려갔다.

작성자는 4년 넘게 만나 결혼도 생각한 여자친구와 대화 중 우현히 그녀의 성적 판타지를 알게 된 사연을 설명했다. 그는 "여자친구는 카메라 앞에 있으면 마치 다른 사람 앞에서 관계를 나누는 듯한 착각이 들고, 이는 야릇한 성적 흥분을 자아낼 것 같아서 꼭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며 "여자친구가 처음으로 얘기한 판타지를 반드시 들어줘야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이하 셔터스톡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이하 셔터스톡

이후 작성자는 여자친구 핸드폰에 두 사람 성관계 장면을 영상으로 남겼고, 해당 영상은 여자친구과 직접 관리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여자친구가 뮤직 페스티벌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리면서 문제는 시작됐다.

작성자는 "핸드폰은 결국 찾지 못했고, 어느 날 여자친구가 대성통곡을 하며 저의 집으로 찾아와서는 각종 성인 사이트에 저희 영상이 올라온 것과 자신의 SNS에 모르는 사람들이 메시지를 보내오는 것을 보여주었다"며 "둘 다 핸드폰만 바라본 채 멍하니 있었고 머릿속은 그저 하얗게 변했었다. 여자친구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여자친구를 달래주고 경찰에 신고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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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은 이미 인터넷에 퍼져 극심한 우울증과 대인 기피증에 시달린 여자친구는 한국 사람이라고는 없는 외딴 해외로 떠났고, 이후 작성자는 사실과 다른 또다른 소문에 고통을 받아야했다.

작성자는 "제가 여자친구에게 차이고 이를 복수하기 위해 영상을 유출한 것이고, 여자친구는 쫓기다시피 해외로 떠났는데 저만 철면피로 지내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며 "더군다나 원래 징역을 살아야 하는데 막대한 합의금으로 이를 무마시켰다는 소문도 돌았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작성자는 "이를 일일이 바로잡지는 않았다. 잘못된 소문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한 명씩 연락하는 것도 불가능했고, 무엇보다 사실을 바로잡기 위해선 기억하기 싫은 일을 떠올려야 하는데 이는 여자친구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 생각해서 차마 그러지 못했다"며 "가뜩이나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한국을 떠난 친구인데 '그 애가 먼저 영상을 찍자고 했다', '난 유출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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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소문은 일파만파 퍼져 작성자를 과에서 제명해야한다는 여론이 형성됐고, 신상이 인터넷에 퍼져 작성자는 입에 담지 못한 험한 욕 문자 테러를 받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악성 소문은 작성자 부모님 회사에까지 퍼졌고, 이에 작성자 어머니는 뇌혈관 질환으로 현재 말도 어눌하고 거동도 불편한 상태가 됐다.

작성자는 "이제 와서 누구를 원망하기도 참 어렵다. 결국, 영상 촬영은 제가 내렸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며 "그러나 분실한 핸드폰에서 그 영상을 찾아낸 뒤 인터넷에 유포한 사람과,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그저 비난의 화살만 쏘아댔던 사람들, 이들만큼은 너무나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여자친구가 겪었을 고통에 비하면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적어도 맹목적인 비난과 근거 없는 인신공격을 당해본 입장으로서 저도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며 "비단 하나의 특정 집단을 지목해서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누군가에게 손가락질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덧붙였다.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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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을 확인한 이용자들은 작성자에게 댓글로 안타까움과 위로를 전했다.

"붓이 칼보다 강하다고 말하는 문필가는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붓으로 이루어진 범죄가 칼로 이루어진 범죄보다 더 큰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면 억울해 합니다. 붓이 정녕 칼보다 강하다면, 그 책임 또한 더 무거워야 합니다"라는 댓글이 베플로 등장하기도 했다.

home 권미정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