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사망한 고 임세원(47)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마지막까지 다른 사람들을 챙기다 변을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 1일 서울종로경찰서는 임세원 교수를 살해한 혐의로 박모(30) 씨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임 교수는 예약 없이 찾아온 박 씨를 마지막까지 진료하다가 변을 당했다.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던 가해자 박 씨는 지난달 31일 오후 5시 45분쯤 임세원 교수를 찾았다. 임 교수에게 입원 치료를 받았던 박 씨는 수개월 동안 병원을 찾지 않다가 예약 없이 나타났다.
당시 진료실에는 비상시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임 교수는 박 씨가 자신을 해치기 위해 진료실 문을 잠그자 이 공간으로 피했지만 간호사 등 진료실 밖에 있는 사람들을 염려해 대피 공간에서 나와 "빨리 피하라"고 소리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씨는 흉기를 수차례 휘둘렀고 임 교수는 박 씨를 피하기 위해 복도까지 뛰쳐나가다 쓰러졌다. 임 교수는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바로 수술실로 옮겨졌지만 2시간 뒤 사망했다.
임세원 교수는 지난 20년 동안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며 자살 예방에 힘써왔다. 관련 논문 100여 편을 발표했으며 2011년 개발된 한국형 표준 자살 예방 교육프로그램인 '보고 듣고 말하기'를 개발했다. 지금까지 전국 70만 명이 참여한 '보고 듣고 말하기'는 2017년 한국자살예방협회가 선정한 '생명사랑대상'을 받기도 했다.
임세원 교수를 향한 추모 물결이 이어지면서 생전 임 교수가 페이스북에 작성한 글이 회자됐다. 인턴 시절 흉부외과 의사를 꿈꿨던 임 교수는 자신이 왜 정신과 의사가 됐는지 술회했다.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외롭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누군가 자신을 도와주길 바라는 절박하게 신호를 보내지만 사람들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외롭게 죽어간다.
가족, 친구, 동료 등 남은 사람들은 그 때 왜 신호를 알아채지 못했는지 자신을 자책하고 절망하며 수많은 시간을 보내야한다. 먼저 보아주고, 환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준 후 그를 살릴 방법을 찾는 것이 정신과 의사다.
힘들어도 오늘을 견디어 보자고, 당신의 삶에 기회를 조금 더 주어 보자고, 그리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우리 함께 살아보자고 나는 그들에게 말한다"
2016년 발간한 저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에서 임 교수는 우울증으로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임 교수는 자신이 직접 겪어보니 환자의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의료계에서는 추모 성명을 발표하며 고인의 죽음을 위로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고인은 본인에게는 한없이 엄격하면서 질환으로 고통받는 많은 이들을 돌보고 치료하고 그들의 회복을 함께 기뻐했던 훌륭한 의사이자 치유자였다"고 전했다.
이어 안전한 병원 진료환경을 만들어 임 교수와 같은 피해자가 없기를 바라는 유가족 뜻에 따라 '임세원법' 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