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년째 안중근 의사 유해를 찾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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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소 묘지 위치에 대한 사료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안중근 의사 탄생 139주년을 맞아 안중근 의사 유해를 찾기 어려운 이유가 전해졌다.
지난 3일 방송된 SBS 라디오 '김성준의 시사전망대'에서는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다음해 31살 젊은 나이에 순국한 안중근 의사를 다뤘다. 지난 2일은 안중근 의사가 탄생한 날이었다.
안중근 의사는 죽음을 앞두고 하얼빈 공원 옆에 자신을 묻어뒀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묘를 이장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이 유언은 10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정성엽 SBS 베이징 특파원은 방송에서 안중근 의사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당시 감옥법에 따르면 사형에 집행된 유해는 가족들에게 인도돼야 한다. 그러나 당시 일본 제국주의는 안 의사 유해를 인도하지 않았고 비밀리에 매장했다. 안 의사 장지가 항일 운동 성지가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중근 의사 사형 집행 보고서에 따르면 안중근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15분쯤에 뤼순 감옥 내 형장에서 사형당했다. 안 의사 시신은 감옥소 묘지에 매장됐다고 기록돼 있지만 감옥소 묘지 위치에 대한 사료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정성엽 특파원은 "1945년 일본이 패망하던 날 뤼순 감옥 마지막 형무소장이었던 타고지로라는 사람이 3일 동안 뤼순 감옥 전체 자료를 전부 다 불태워버렸다"라며 "그래서 뤼순 감옥 공동묘지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확인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2008년 뤼순 감옥 뒤쪽 일대 약 3000㎡ 정도 지역을 정밀 탐사했지만 유골은 발견되지 않았다. 현재 이 지역에는 아파트 단지가 세워져 있다.
남아 있는 다른 후보지로는 뤼순 감옥에서 동쪽으로 1.2km 떨어진 '둥산포'라는 야산이다. 산 곳곳이 일반인 공동묘지로 쓰였고 일부는 뤼순 감옥 묘지로도 쓰였다고 알려졌다. 2008년 당시 발굴팀은 이 둥산포 지역을 그냥 지나쳤다고 한다.
중국 정부는 2008년 발굴 당시 협조적 입장이었다. 하지만 발굴이 실패하자 안중근 의사 유해 행방에 관한 확실한 문건이 나오기 전까지 협조하기 어렵다고 태도를 바꿨다. 남북한이 합의해 정확한 유해 매장 지역을 특정해오는 것을 협조 전제로 내걸었다.




이와 관련, 지난달 14일 문재인 대통령은 "내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정부는 북한과 공동사업으로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5월에는 한 고등학생이 '안중근 의사 유골 발굴 청원'을 올려 많은 사람들 가슴을 울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