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기 다른 캔음료 '점자' 읽어보니 모두 '음료'라 쓰여 있었다

2017-07-20 15:20

캔음료 점자 표기가 시각 장애인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 캔음료 점자 표기가 모두 '음료'로 표기돼 있어 시각 장애인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편의점에 유통되는 캔음료 8종을 무작위로 골라, 캔뚜껑에 적힌 점자 표기를 점검해봤다. 음료 이름도 다르고 캔 디자인도 각각 달랐지만, 점자로는 모두 '음료'라 적혀 있었다. 시각 장애인은 원하는 음료를 고르지 못하고 아무 거나 마셔야 한다는 뜻이다.

주스든 커피든 콜라든 이온음료든 점자로는 전부 '음료'라고만 적혀 있다. 각각 어떤 음료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주스든 커피든 콜라든 이온음료든 점자로는 전부 '음료'라고만 적혀 있다. 각각 어떤 음료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용산지회장인 시각장애인 최승혜(여·63)씨는 "편의점에 거의 혼자 가지 않는다. (사고 싶은 걸) 고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편의점은 직원 도움 없이 물건을 골라야 하는 곳이라 시각장애인에게 어려움이 많다. 최 씨는 도우미와 함께 편의점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도 실명자인 최 씨는 "선천적 시각장애인 경우에는 나보다 더 힘들 것"이라고 했다.

한 국내 식음료업체 관계자는 "주류와 나머지를 구분하기 위해 점자를 표기하기 시작하다보니 '음료'라고 적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음료'라는 점자 표기는 보여주기식 배려에 불과하다는 반응이다. 대학생 강모(여·23)씨는 "냉장고에 든 캔이 음료수라는 것은 시각장애인도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이들이 원하는 정보는 구체적인 음료명"이라고 지적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캔음료 점자 표기는 의무사항이 아닌 선택사항이다. 업체가 캔음료에 점자 표기를 할 것인지, 어떤 내용을 할 것인지 등은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식약처 '식품 등의 표시 기준'에는 "제품명, 유통기한 등의 표시 사항을 알기 쉬운 장소에 점자로 표시할 수 있다"고 나와있다.

점자 표기 문제는 국산 캔음료만의 문제는 아니다. 수입 맥주도 점자표기는 선택사항이다.

칭따오, 블랑, 데스페라도스 등 국내에서 인기가 많은 수입 캔맥주에는 점자 표기가 아예 빠져있다. 아사히, 삿포로, 기린 등 일본 캔맥주에는 점자가 새겨져 있다. 그러나 'お酒(오사케·술)'라고 적혀 있기 때문에 일본어 점자를 모르는 국내 시각장애인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점자 표기가 아예 없는 수입 맥주도 많다(왼쪽 사진). 일본 맥주도 일본어 점자로 '술'이라고 적혀 있다 (오른쪽 사진)
점자 표기가 아예 없는 수입 맥주도 많다(왼쪽 사진). 일본 맥주도 일본어 점자로 '술'이라고 적혀 있다 (오른쪽 사진)

다행히 시각장애인 의견을 수렴해 점자 표기에 일부 변화를 준 곳도 생겼다. 음료 제조업체 롯데칠성음료는 지난 2월부터 탄산 캔음료에는 '음료' 대신 '탄산'이라고 적기로 했다. 칠성사이다, 밀키스, 마운틴듀, 트로피카나스파클링 등 탄산음료 제품에 전부 적용됐다.

롯데칠성음료는 "비용, 시간 문제 등으로 카테고리별로 다른 점자를 표기하진 못했다"며 "탄산이 매출 비중이 높은 편이라 탄산부터 점자를 바꾸게 됐다"고 말했다.

칠성사이다(오른쪽)에는 점자로 '음료' 대신 '탄산'이라고 적혀 있다
칠성사이다(오른쪽)에는 점자로 '음료' 대신 '탄산'이라고 적혀 있다


코레일유통은 캔음료 자판기에 시각 장애인을 위한 아이디어를 냈다. 코레일유통은 지난 2015년부터 KTX, 서울지하철 1호선에 설치된 음료 자판기에 점자 스티커를 붙이기로 했다. 점자 스티커에는 구체적인 음료명이 적혀 있다. 점자 스티커는 코레일유통이 관리하는 자판기 2553대 중 2400대에 부착돼 있다.

점자 스티커에는 제품명이 적혀있다 / 코레일유통 제공
점자 스티커에는 제품명이 적혀있다 / 코레일유통 제공


최승혜 씨는 "20~30대, 젊은 시각장애인은 물건을 사러 편의점에도 잘 가는 편"이라고 전했다. 그는 "(그동안은 캔음료를 살 때) 음료라고 적힌 것만 보고 사오더라"고 했다. 최 씨는 "구체적인 (제품) 정보가 점자로 표기된다면 시각장애인이 혼자 편의점 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home 강혜민 기자 story@wikitree.co.kr